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큐레이터로 꼽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Obrist)’의 2015년 저서 ‘웨이즈 오브 큐레이팅(Ways of Curating·사진)’이 최근 한국어로 번역됐다. 펴낸곳은 ‘아트북프레스’. 미술 비평가이자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조숙현씨가 지난 2018년 만든 현대미술전문 독립출판사다. 번역은 양지윤 대안공간 루프 디렉터가 맡았다.
오브리스트는 현재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Serpentine)갤러리의 예술감독으로, 예술 전문잡지 ‘아트 리뷰’가 매해 발표하는 ‘현대 예술계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power 100)’에서 2009년과 2016년 두 차례나 1위에 오른 ‘슈퍼 큐레이터’다.
‘웨이즈 오브 큐레이팅’의 부제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큐레이터 되기’다. 작가는 인터넷·디지털 시대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누구나 큐레이터적인 결정을 내리는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라며 “일상생활에서 놓이는 자잘한 선택의 순간뿐 아니라 과학·경영·예술·음악 등 모든 분야에서 지식을 모아 연결한 다음 가장 좋은 결정을 이끌어내는 게 큐레이션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세계 최고의 큐레이터가 되기까지 여정은 물론 전시 기획 과정이 가감없이 담겼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이들에겐 일종의 ‘비법서’인 셈이다. 현직 큐레이터들 사이에도 수없이 회자돼, 한국어 출간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이번 책은 아트북프레스가 처음 출간한 책이다. 큐레이터가 세운 독립출판사에서 처음 선택한 책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큐레이터의 책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조숙현 대표는 오브리스트의 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첫째, 유명 큐레이터다. 둘째, 서유럽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큐레이터 라는 직업에 대해 철학적 입지를 넓혀가려는 야심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책에선 큐레이터의 어원을 좇는 등 큐레이팅 자체에 대한 관점도 실려있다.
조 대표는 이어 “오브리스트는 이미 막강한 권력자다. 그러나 책에선 그렇지 않다. 10대 후반 취리히에서 만난 거리의 예술가에 대해 조사하고 탐구했던 그에겐 순수하고 열정적인 면모가 보인다. 큐레이터로 존경스러운 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웨이즈 오브 큐레이팅’은 출간을 위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했다. 최소 목표금액 100만원을 훨씬 넘겨 약 500만원 가까이 펀딩이 진행됐다. 내달 1일 펀딩이 마감하면 약 20일 안에 책이 나온다. 조 대표는 “현대미술책은 늘 시장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수요가 많지 않더라도 읽어야 하는 책들도 있고, 꼭 필요한 책들도 있다. 아트북프레스는 앞으로도 이같은 책을 선택해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