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본다는 것’ 혹은 ‘보이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는 유럽,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의 41개국 이상에서 체험전시와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어둠속의 대화’라는 개념은 1988년 안드레아스 하이네케(Andreas Heinecke)박사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의 발상은 1989년 독일에서의 첫 암흑 전시회를 시작으로 꾸준히 성장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형식이 추가되면서 오늘날의 ‘어둠속의 대화’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2010년 신촌 전용전시장을 시작으로 진행되다가 2014년 북촌 스토리 공간 디스페이스(D.SPACE) 상설전시관으로 이전하면서 올해로 10년 차에 접어든다.
한번 다녀온 이들의 극찬을 아끼지 않는 리뷰와 적극적인 추천으로 뒤늦은 발걸음을 했다. 거두절미하고 최근 이토록 강하고 긴 여운이 남았던 전시나 공연이 있었던가. 100분간의 어둠 속 체험이 이토록 극단적인 깨달음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랍기만 했다. 주춤거리며 로드마스터의 안내에 따라 시작된 어둠 체험, 한 손에 어색하게 쥐고 있는 지팡이를 휘저어보지만 로드마스터의 안내가 없으면 한 걸음 조차도 발을 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잔상조차 없는 암흑, 눈을 감고 있어야 하나 뜨고 있어야 하나… 눈을 뜬 들 어차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타인의 나이, 외모, 사회적 지위, 차림새와 같이 시각을 통해 구분했던 그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두려움을 걷어내 보고자 일면식도 없는 동행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웃어도 보지만 어둠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혹여 뭐라도 보일까 눈을 게슴츠레 떠보기도 하고, 뭐라도 느껴질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무언가를 찾았다. 어디만큼 온 것일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방황하던 시간이 지나고 어둠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천천히 감각되기 시작했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감각은 어둠 속에서 매우 낯설게 다가왔고, 그곳에서의 시간은 시각적 지배 속에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각의 기억과 무의식 속에 잠재된 상상력을 깨웠다. 어둠으로 차단된 시야가 자연스럽게 감각을 불러들이기 시작하면서 촉각과 맛 그리고 소리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풍경을 그려냈다. 새가 지저귀는 공원을 지나 보트를 타고, 시장과 카페를 지나는 과정에서 들려오는 일상의 소리는 청각으로부터 상상되는 모든 것을 어둠 속에서 형상화 시켰고, 손 끝으로부터 섬세하게 전해지는 촉각적 경험은 극도의 감각적 확장을 넘어 각성에 이르게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 중심에는 시각 미디어의 홍수가 자리하고 있고, 시각중심사회에서 감각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완전한 어둠속에서의 뜻밖의 감각을 앞세운 경험은 자연스럽게 현재라는 시간에 집중하도록 하면서 감각으로 세상을 식별하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는 것, 지금 느껴지고 있는 이것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둠속의 대화’는 관객들에게 어둠 그리고 장애라는 편견과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보는 것의 방식 그리고 본다는 것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매우 특별하고 매혹적인 경험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