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라오페라단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그 시절 IMF는 우리 모두에게 비극을 불러왔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내몰려 거리로 쏟아졌고, 전업주부들은 생활 전선으로 뛰어들었다. 어떤 가족은 모든 순간이 고단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도 IMF라는시대가 남긴 가혹함이었다. 부모는 가족의 동반자살을 계획한다. 그나마 어린 막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에 막내를 놀이공원에 유기한다. 가족의 동반자살은 실패. 막내는 버려지고, 가족은 어려운 고비들을 넘기며 살아남아, 살아갔다.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면, 얼어붙은 땅이 녹고, 그 사이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이들 가족에게도 반짝이는 생은 찾아왔다. 다시 일어난 가족은 번듯한 양옥집을 가지게 됐다. 누나는 어느 자리에서나 힘을 가질 수 있는 서울대 법대생이 됐고, 형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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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막내도 돌아왔다. 막내의 삶에 로또는 없었다. 그의 별명은 까마귀. 먹을 것을 보면 훔치고 빼앗는다고 붙은 수사였다. 버려진 자신과 달리 평온한 삶을 살던 가족들에 대한 분노는 위협으로 되돌아갔다.
세월이 흘러 다시 일어난 가족은 2층 양옥집도 가지게 되었고, 누나는 서울대 법대 진학, 형은 해비타트 운동(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훌륭하게 성장하였다. 그러던 중 잃어버렸던 막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막내를 찾게 된 기쁨도 잠시. 어디서도 집을 갖지 못하고 먹을 것을 보면 훔치고 빼앗는 ‘까마귀’로 불려온 막내는 자신만 빼놓고 평온한 삶을 살아온 것에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가족에게 날을 세우며 즉각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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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오페라 ‘까마귀’는 잃어버린 막내를 13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가족의 이야기다.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2020년 시즌 첫 작품 창작오페라 ‘까마귀’가 7일, 8일 이틀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 작품은 2019 공연예술 창작산실 창작오페라 부문 올해의신작으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극작가 고연옥의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작곡가 공혜린이 오페라로 재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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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엉킨 가족의 이야기 속에 해묵은 오해를 풀어가는 장면들은 오페라의 클라이맥스다. 엄마 역할의 소프라노(강혜명 최영신)들이 막내를 향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던 날들을 노래하는 장면은 오페라 ‘까마귀’의 절정이다.
한 가족의 고통과 희망을 그린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가족과 인생을 돌아보며, 우리의 모습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해선 과거의 나를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번 공연에는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 중인 소프라노 강혜명, 한은혜, 이정은, 테너 서필, 바리톤 장성일, 베이스바리톤 양석진을 비롯, 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전문 교육 프로그램 ‘라벨라오페라스튜디오’의 단원 소프라노 최영신, 홍선진, 테너 김지민, 베이스 전태화가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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