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정한결의 콘텐츠 저장소] 우리 사회 인간사 압축한 ‘군림’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무용작품 ‘군림’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2월 1일-2월 2일)에서 공연됐다. 현대무용 공연으로 분류되는 ‘군림’은 에스디아트엔코(대표 및 안무 정수동)의 작품으로, 우수 창작 레파토리를 발굴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자원 사업을 통해 선정됐다. 이 사업은 매년 연극, 창작뮤지컬, 무용, 전통예술, 창작오페라의 주목할 만한 창작품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공연 작품의 주제는 최근 정치, 사회,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첨예하게 대두된 문제의식을 관통하고 있다.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존중 받지 못할 관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속 군림들의 이야기이다.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면서 안무가와 무용수들(고흥열, 김주현, 김상각, 양진영, 임소정, 윤일식, 문형수, 박상준, 정수동)은 관련 사진들을 취합하고 개인의 기억들을 유추해 현장의 모습 속 상황과 그 속에서의 몸의 모습을 발견해 움직임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군림’을 통해 시의적 주제를 어떤 시각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증을 가지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빠른 비트의 음악과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빛을 쏘는 가운데, 무용수들이 네온사인 속 마치 어떤 레이스를 하듯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며 등장한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둘 셋 짝을 지어 동작을 하며 이동을 지속한다. 제스처로부터 발전된 동작들은 세력과 계급 아래 몸을 낮추고 웅크리는가 하면 양 팔을 활용하여 몸을 부풀린다. 화려한 조명과 같이 가지각색의 빛깔을 가진 패딩점퍼를 입고 벗으며 스스로를 더욱 탄탄한 존재로 과장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점점 분절되고 해체될 때쯤, 무대 뒤에서는 멀리서부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드리워진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롱패딩이 유령처럼 모습을 나타내는데, 마치 얼굴 없는 거인과 같이 어떻게 보면 섬뜩하게도 느껴진다. 거대한 롱패딩의 등장과 그 앞에서 분절되고 뿔뿔이 흩어져 버린 무용수들의 모습은 서로 대비되는 가운데, 그저 인간은 거대한 오브제 앞에서 작고 약한 존재가 된다. ‘믿고 있던 것이 모두 무너져 내린 순간, 홀로 우뚝 서 군림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무용수들은 하나 둘 롱패딩 속으로 기어 들어가 숨는다.

의심이나 거부감 없이 한 겨울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외출 시에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옷,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롱패딩은 작품 속에서 ‘군림’이라는 우리 사회 속 인간사를 압축한다.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갑옷처럼 나를 지켜내기 위한 보호 장치로 비유되는가 하면, 어떠한 절대적 세력이나 계급으로부터 형성되는 개인과 단체 혹은 높고 낮음 등 크기와 거리의 대립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했다.

군림하고 지배하려는 자들과, 그들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하는 사람들,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은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군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혼돈의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 무엇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지, 우리가 서있는 이 곳은 어디인지 ‘군림’속에서 안무가는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공연칼럼니스트/dear.hankyeol@gmail.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