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인·안초롱 등 30대 작가 5인
페미니즘 이후 ‘여성들의 삶’ 투영
여성 통념·불평등한 사회구조 등
설치·조각·회화로 가감없이 표현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가 배경으로 삼은 2020년이 밝았다. 밀레니얼이 시작한지도 20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밀레니얼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5명의 30대 여성작가들이 여성이 처한 현재를 짚어본다. 사진은 윤지영, 레다와 백조 전시 전경, 복합 매체, 170x221x166 cm, 2019[아트선재센터 제공] |
이혜인, 알베르틴, 캔버스에 유화, 8개, 2017[아트선재센터 제공] |
밀레니얼이 도래한지도 벌써 20년이 흘렀다. 사문화 된 줄 알았던 페미니즘이 다시 거세게 몰아친 2010년대를 마무리하고 2020년이 시작됐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바뀐것이 없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밤이 낮으로 변할때’는 30대 여성작가 5인이 꾸린 전시로, 이같은 상황을 가감없이 직면케 한다. 이혜인, 안초롱, 강은영, 윤지영, 송민정이 참여했다.
전시장 입구에선 가장 먼저 이혜인의 회화를 만난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풍경을 담은 ‘알베르틴’ 시리즈는 부모님 집 앞마당이 배경이다. 이젤을 들고 바깥에서 해가 쨍한 여름날 24시간을 3시간 단위로 나누어 그렸다. 아침부터 낮 그리고 밤까지 지켜보며 그린 그림은 여름날 특유의 생생함을 담고 있다. 뒷편에는 ‘겨울 밤 알베르틴’이 걸렸다. 같은 장미나무를 최근 겨울 밤 속에서 포착했다. 어둠에 묻혀 형태가 거의 보이지 않지만 시들어버린 줄기와 이파리들이 이제는 가버린 여름날을 흔적처럼 기린다. 작가에겐 ‘장미’와 ‘엄마’가 한 쌍을 이룬다.
‘맘 루킹 아웃사이드(Mom_looking outside)’는 집안에서 창 밖의 장미나무를 바라보던 젊은 엄마의 기억이다. ‘맘 루킹 인사이드(Mom_looking inside)’는 ‘맘 루킹 아웃사이드’를 추상화한 작업이다. 구체적 형상이 사라졌지만 두 작업이 동일한 인물을 표현하고 있음을 나란히 걸린 한 쌍의 그림에서 유추할 수 있다.
전시장 바닥엔 안초롱의 작업이 자리잡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촬영하고 수집한 사진 이미지들이다. 그중엔 네팔을 여행했던 친구로부터 받은 엽서 이미지를 크게 확대한 것도 있다. 망점이 깨지고 맥락이 사라진 이미지는 파편화되고 부유한다. 네팔의 풍경은 2층 구조물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아야 의미를 얻는다. 눈바람을 뚫고 끝까지 균형을 잡으려 비행하는 새의 움직임을 담은 송민정의 영상작업 ‘윈도우(window)’가 네팔의 풍경과 중첩되며 묘한 앙상블을 완성한다.
전시장 중앙엔 윤지영의 설치와 조각작업이 전시됐다. 제우스가 백조로 변해 유부녀인 레다를 겁탈한 그리스 신화를 재현한 ‘레다와 백조’는 에로틱한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분노에 찼으나 단호한 손이 나타나 백조의 목을 꺾고 그 입에 성기를 물린다. 이를 둘러싼 세 개의 설치에는 신화 속 내용을 타투로 새겼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하지만 피해자가 고통받는, 신화가 왜곡해 온 불평등한 구조를 시원하게 비튼다.
마지막으로 강은영작가는 존재할 수 없는 정원을 만들었다. 계절이 섞인 꽃과 나무가 만든 정원은 아름답지만 한편으론 기괴하다.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 여성에게 ‘꽃’이길 강요하고, 특정 이미지를 기대하는 사회는 여성을 여성으로 보지 않고 하나의 관념을 덧씌울 뿐이다.
5명의 작가가 본 ‘2020년의 여성’은 점령군도, 혹은 피해자도 아니었다. 그저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무엇을 ‘버티고’ 있는지는 관람객의 시선에 따라 다르다. 적어도 버티기의 끝에는 더이상 버티지 않아도 될 상황이 2030년에는 찾아오기를 전시장을 나서면서 기대해본다. 전시는 2월 9일까지.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