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공연물은 극장을 넘어섰다. 미술관이 전시만을 위한 전유(專有)공간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다. 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이 점차 확장되면서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복합공간으로서 관람객과의 소통을 도모하고 있다. 전시와 연계한 음악, 무용, 퍼포먼스, 체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전시 관람의 경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으로 기획된 전시가 있었다. 지난해 12월 27일부터 1월 19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검은 바위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The Black Rock is hard to find·사진)’라는 전시다. 이 전시는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하나 전시기간 동안 세 번의 퍼포먼스(음악감독 이재하 및 퍼포머 김희영, 이희문, 채수현)가 기획된 전시·공연 연계프로젝트다. 오재우 작가는 설치, 영상, 사진 작업과 함께 전통소리꾼과의 협업을 통해 공연을 제작해오고 있다.
경기민요 휘모리 잡가 중 하나인 ‘바위타령’의 가사에서 시작되었다는 작가의 물음은 오늘날 만연해 있는 빈번한 시각과 잊힌 감각에 향해있다. 말로 세상이 전해지던 시절에 공간과 사물은 어떻게 인식 되었는가. 구술로 전해진 세상은 현실의 공간이나 사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바위타령의 가사에서 보여지는 사고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작가는 과거에는 당연했으나 지금은 잊혀져가는 감각들을 소환했다. 전통의 청각문화와 첨단 미디어 환경 속 현대의 시각문화 사이에서 잃어버린 감각의 실마리를 찾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경험하기를 원했다.
시각적인 자극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인간들의 삶, 머릿속에 있어야 할 기억과 몸에 남아 있어야 할 경험들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온라인에서 시각화된 채 보존되고 그곳에서 떠돈다. 심지어 본다는 것은 곧 믿음으로 연결된다. 보이는 것 이외의 더 이상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게 된다. 어찌 보면 작가는 본 것으로만 구성되어가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전시장 그리고 낯선 공간, 관람객들은 각자의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플래시를 비추며 들어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 했던 전시장 안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플래시가 만들어낸 빛의 여운으로 의외의 운치가 있었다. 오픈 채팅방을 통해 지령이 내려오고 관객들은 그 지령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어둠 속에 숨겨져 있는 검은 바위들 가운데 자신을 닮은 바위를 찾고, 찍고, 이름을 지어야 한다. 관객들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바위들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고, 곧 들려오는 장구소리에 이끌렸으며 소리꾼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진행된 전시 관람과 미션 그리고 약 30분간의 퍼포먼스를 통해 관람객들의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 깨웠다.
전시장에 불이 켜지고 한 눈에 들어오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벽에 걸린 작품들과 군데군데 흰 모서리를 채우고 있는 검은 바위들이 존재를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를 테면 공간의 온도, 냄새, 울림, 신성함, 에너지와 같은 것들의 존재가 그러하듯 우리에겐 감각으로부터 기억되어야 할 것들이 있고, 감각으로만 체득 가능한 것들이 있다. ‘검은 바위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분명 전시라고 이름 붙였으나,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귀로 들어야만 하고 감각적으로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공연칼럼니스트/dear.hankyeo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