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악 공연에 대해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지루하다’거나,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국악 공연이 ‘재미없다’는 평가도 비단 편견만은 아니다. 많은 국악 공연은 여전히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런 이유로 최근엔 국악을 재해석한 새로운 공연과 독특한 모습의 젊은 국악인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파격 없는 전통이 때로는 가장 ‘힙’(Hip·최신 유행)하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선 올해로 창단 55주년을 맞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세종과 함께 여는 새해음악회’가 열렸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새해를 여는 유일무이한 국악 공연이다.
이 공연은 국악판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 국악 문외한들이 즐기기에 더없이 친절한 공연이다. 연주는 물론 선곡에 어우러지는 다양한 영상과 아나운서의 진행까지 더해져 누구라도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굳이 파격을 시도할 필요도 없었다. 화려한 라인업으로 있는 그대로의 ‘지금의 국악’을 보여준 것이 강점이 된 공연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제공] |
공연은 국악관현악 ‘아침을 두드리는 소리’로 문을 열었다. 섬세한 선율로 소리를 쌓아가는 우리 악기들은 어슴푸레한 새벽을 지나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까지 서서히 달려나간다. 아침을 깨우는 맑은 소리는 어둠 속에 가려진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나는 영상과 어우러져 다채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몸풀이가 끝나자,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던지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원완철 단장의 대금과 관현악단의 협연에 대극장 안은 이내 신비로운 기운까지 감돌았다. 목관안기에서 울리는 청아한 소리가 대극장에 퍼지면, 관객은 숨 죽인 탄성을 뱉기도 했다.
뒤이어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최윤영 경상도민요보존회 이사장과 산유화어린이민요합창단이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나라’를 선보였다. 현대적 소리에 가까운 최윤영과 민요합창단의 깨끗한 소리에 국악관현악이 풍성함을 더했다. 아이들의 무대 위 율동은 보는 재미까지 선사했다.
1부의 구성은 새해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같은 스토리텔링이었다. 긴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한 해의 시작에 앞서 묵은 기억과 감정을 털어낸 뒤, 희망찬 포부와 목표를 세워보는 것.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 새해의 이미지가 국악 공연으로 형상화됐다.
1부의 공연이 관객들을 국악의 세계에 무난히 발을 들이게 했다면 2부는 본격적으로 빠져들 시간이다. 명창 김영임, 명인 김덕수의 출연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경기민요 ‘한오백년’을 포함한 민요연곡은 명창 김영임의 독보적인 카리스마에 취할 수 밖에 없는 무대였다. 유려하게 뻗어나가는 구성진 가락과 소리가 관객을 압도한다. 명창의 숨소리 하나 하나가 공연의 일부가 된다.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 ‘애국가’를 섞은 아리랑은 “김영임의 아리랑은 다르다”는 그의 자부심을 고스란히 보여준 무대였다.
마지막 무대는 명인 김덕수의 사물 연희와 국악관현악 ‘신모듬’이 올랐다.
공연 시작에 앞서 객석을 통해 무대로 입장하는 것은 ‘문굿’의 통과의례지만, 이러한 무대가 처음인 관객에겐 그 자체로 신선한 퍼포먼스였다. 공연장과 관객을 하나로 만드는 이 순서를 시작으로 사물놀이와 국악관현악의 협주가 이어지자 객석에서도 신명나는 한 판이 시작됐다. 사물놀이한울림예술단이 함께 오르며 사자놀음까지 이어지자 무대는 절정으로 치달으며 화려하게 마무리됐다.
객석의 반응은 뜨거웠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두 시간이 넘었던 공연은 지루할 틈도 없이 지나갔다. 관객들의 아쉬움은 뜨거운 박수와 앙코르 요청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화려한 프로그램 구성으로 6년째 선보이고 있는 ‘세종과 함께 여는 새해음악회’는 국악 공연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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