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순간, 예술로 변하는 과정 추적
이세현 ‘붉은산수’ DMZ 풍경에서 착안
손봉채, 커닝페이퍼서 입체회화로 완성
작가 21명 참여…노트·초기작 등 전시
이명호, 드러낸 21, 종이에 잉크, 78x110xm, 2019 [사비나미술관 제공] |
홍순명, Berlin. May 30, 캔버스에 유채, 259cmX194cm, 2009 |
과연 ‘예술’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누구나 ‘예술적 자질’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일반인인 나와 작가인 예술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술가는 태생부터 다른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 훈련된 것일까.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은평구 사비나미술관은 2020년 특별기획전으로 ‘뜻밖의 발견, 세렌디피티(serendipity)’전을 개최한다. 일상의 순간이 특별하게 ‘발견’되고 이것이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따라간다. 2018년 안국동에서 이전하면서 개최한 재개관 특별전 ‘예술가의 명상법’에 이은 두 번째 예술가 시리즈다.
미술관 2층과 3층을 활용하는 전시엔 총 21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를 보다보면 초반엔 ‘예술가들이 창작에 영감을 받는 순간은 일반인과 똑같구나’ 싶지만 어느 순간 ‘확실히 다른’ 지점을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붉은 산수’로 유명한 이세현 작가는 1989년 군 복무시절 야간투시경으로 본 DMZ풍경에 매료됐다. 온통 녹색으로 물든 신비하고 낯선 광경은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한 비현실적 풍경으로 다가왔고, 이것이 붉은 산수로 탄생했다.
손봉채 작가는 커닝페이퍼에서 영감을 얻었다. 대학강사시절 투명한 OHP필름을 이용해 답안을 작성하던 학생의 커닝페이퍼를 압수한 그는 필름과 답지가 겹쳐지며 잔상이 생기고 입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에 착안했다. 이후 폴리카보네이트 등 투명한 재료에 이미지를 그리고 이를 겹겹이 쌓아 입체적 회화로 재탄생 시켰다. 이외에도 홍순명 작가는 파리 유학시절 읽은 하이젠베르크의 저서 ‘부분과 전체’에서 영감을 받아 주변을 부각시키는 회화로 발전시킨다.
김승영 작가는 ‘폐허’의 이미지를 위해 폼페이까지 갔지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생활하던 레지던시 근방의 한 골목길에서 폐허의 이미지를 마주치고 이를 3년에 걸쳐 비디오작업으로 완성시킨다.
성동훈 작가는 국제사막 프로젝트로 방문한 몽골에서 마주친 야생 산양에서 영감을 받았고, 최현주 작가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계란프라이에서, 윤진섭 작가는 구로역에서 내려 문래예술공장으로 향하던 보도에서 발견한 부러진 삽에서 작업의 단초를 얻었다.
전시의 제목인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발견을 말한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운좋게 발견해 새로운 돌파구가 뚫리는 지점이다. 그러나 모든 세렌디피티가 창의적 결과물로 나타나는 건 아니다.
미술관측은 “지름길은 없다. 관찰, 실험, 연구, 몰입, 인내심 등 여러 단계를 거쳐 결실을 맺는다”고 설명했다. 21명 작가의 노트와 초기작들에서 이같은 과정이 여실히 보인다. 새로운 결심으로 가득한 연초에 들러보면 좋을만한 전시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