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없는 사회 가속화 하며 현금 기부 ‘뚝’
기부단체들, 모바일 기부 늘리며 해법 모색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앞에서 만난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자원봉사자 이모(46) 씨 부부. [정세희 기자] |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앞.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을 알리는 종소리가 거리에 울렸지만 시민들의 참여는 싸늘했다. 인파가 많이 몰리는 버스 정류장 근처였지만 모금함을 관심있게 쳐다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자원봉사에 나선 이모(46) 씨는 “사람들의 마음이 날씨만큼이나 차가워진 것 같다”며 “사람들이 모금함을 쳐다보지도 않으니 헌금 역시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찬바람을 맞으며 수십분째 애타게 모금의 손길을 기다린 부부의 코 끝은 발갛게 얼어있었다.
연말연시 기부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현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계속된 경기침체에 기부할 마음의 여유가 줄어든데다, 각종 사건사고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종각에서 만난 한 자원봉사자는 “경제적으로 불안하다 보니 쉽게 남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을 못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까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카드 사용 등으로 인해 현금 없는 지갑이 늘어나는 것도 기부를 어렵게 하는 원인이란 주장도 나왔다. 과거에는 주머니에 있던 잔돈으로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100원 조차 갖고 다니지 않으니 현금 기부는 옛말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현장 자원봉사자들은 단돈 몇천원 기부도 크리스마스의 선물만큼 큰 기쁨이라 설명했다. 자원봉사자 김모(50) 씨는 모금 10분만에 현금을 기부한 50대에게 “메리크리스마스”를 연신 외쳤다고 했다. 이후 모금함에 돈을 넣은 이는 단 3명뿐이었다. 그는 “워낙 기부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너무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라며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 다들 수줍은듯 아무말 안하고 지나가지만 그 얼굴에선 따뜻한 행복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열매 온도탑.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25.6%로 직전 조사인 2017년 때보다 1.1%포인트 줄었다. [정세희 기자] |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부를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25.6%로 직전 조사인 2017년 때보다 1.1%포인트 줄었다. 2011년 36.4%에 비해서는 10.8%포인트나 감소했다. 기부하지 않는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51.9%)가 가장 많았다. ‘기부 단체 등을 신뢰할 수 없어서’(14.9%)는 전 조사보다 6.0%포인트나 증가했다. 향후 기부 의향이 있는 사람은 39.9%, 유산 기부 의향이 있는 사람은 26.7%로 역시 2년 전 조사 때보다 각각 1.3%포인트, 7.8%포인트 줄었다.
기부 단체들은 달라진 사람들의 기부 인식과 소비 패턴에 맞춰 모바일 기부 등을 늘리는 돌파구를 찾아나서고 있다. 지난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는 기부단체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기부자맞춤기금’을 시작했다. 이 기금은 기부자 개인이 작은 재단을 설립한 것과 같이 기부처가 기부자와 논의해 기금사업 내용과 기금운용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빠른 피드백과 간편한 기부를 원하는 젊은층을 위한 모바일 기부도 도입했다. 사랑의 열매 사랑의 온도탑 앞에는 현금 기부뿐만 아니라 휴대폰 결제를 할 수 있는 곳도 마련됐다. 심정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부장은 “사람들이 더욱 쉽고 신뢰할만한 기부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면서 “연말이 아니더라도 연중에 일상적인 정기 기부가 늘어나 기부의 토양이 넓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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