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매년 12월만 되면 ‘플러스·마이너스’ 리스트를 끄적여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올 한 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성과나 성취를 플러스에,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이런저런 잘못들을 마이너스에 넣는 식이다. 돌이켜 보니 플러스에 올릴만한 건 선뜻 떠오르지 않고 죄다 마이너스 뿐이다. 잠깐 고백하자면,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춘기 딸의 감정을 폭 안아주지 못한 게 그 중 하나다. 이것도 직업병인지, 친구와 다툰 얘기를 어렵게 꺼내는 딸에게 기어코 팩트를 따져가며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러니 네가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며 입을 막아 버리는 식이다. 마이너스다.
같은 기준으로 2019년 대한민국 사회를 들여다 본다.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이너스 투성이다. 올핸 특히 슬프고 분노할 일들이 많아 크고 작은 ‘마이너스’들이 줄을 이었다. 클럽 버닝썬 폭행사건으로 드러난 연예인들의 일탈과 민낯, 패스트트랙 충돌로 인한 ‘동물 국회’ 재연, 작년 뉴스를 읽고 있는 건가 싶을 만큼 1년만에 되풀이된 청와대 특감반 사찰 의혹, 수출규제와 지소미아 사태 등으로 깊어진 한일 갈등의 골. 사건사고도 많았다. 지난 봄 강원도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 28명의 목숨을 앗아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7명이 희생된 독도 소방헬기 추락사고, 꽃같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연예인들. 무엇보다 민심을 둘로 쪼개 대한민국을 이념의 전쟁터로 만들어 버린 조국 사태는 온국민을 오랜 시간 우울과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마이너스, 마이너스.
경제지표 등 각종 숫자는 실제로 마이너스의 행렬이었다. 대한민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수출은 12개월 연속 마이너스(11월 수출 전년대비 -14.3%), ‘경제허리’ 격인 3040의 일자리 감소(상반기 취업자수 전년대비 -25만명), 올해 1인당 국민소득 4년 만에 감소(전년대비 -1400달러) 등이다. 출산률 하락은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암울한 마이너스다. 올해 3분기 전국 출생아 수는 작년 동기보다 8.3%나 줄었고, 3분기 합계출산율도 0.88명으로 추락했다. 플러스는 오로지 서울 집값 뿐이다. 그래서 또 마이너스.
산더미처럼 쌓인 마이너스를 조용히 품은 건, 작은 ‘플러스’들이다.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생면부지의 시민을 끝까지 돌보며 현장을 지킨 인천의 간호사, 출장 중 음식점 화재를 목격하고 주저없이 화재 진압에 앞장선 충주 소방관들, 위급한 산모를 태운 차량이 지나가도록 수백대 차량이 일사불란하게 길을 터준 경기도 광주 어느 도로 위,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 써달라며 평생 모은 1000만원을 기부한 80대 할머니, 승용차를 번쩍 들어 올려 자동차 아래 깔린 70대 할머니를 구조한 대전 시민들….
바로 내 옆의 가장 평범한 이들이 만들어낸 기적, 그들을 향해 또다른 평범한 이들이 보내는 경의, 상처입은 이웃을 보듬는 위로와 격려, 기쁘게 나누는 삶, 정의를 향한 공감과 유대감으로 만들어낸 따뜻한 공기. 이런 작은 플러스들이 모여 2019년 대한민국을 지탱했다. 결국 올해도 또 인정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겠다. 평온하게 한해를 보내고 2020년 새해를 맞을 수 있는 건, ‘보통의 우리’들이 만든 작은 기적 덕택이라는 것을. anju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