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설치작가 양혜규의 ‘핸들’ 기획전
거리 행위 예술가 윌리엄 포프 엘 개인전
‘기어가기’ 퍼포먼스 ‘낮은 자세’로 교감 추구
Willian Pope.L, Tompkins Square Crawl. [MoMA 제공] |
2019년 창립 90주년을 맞이하며 증축과 리뉴얼 공사를 마친 뉴욕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이하 MoMA)이 재개관했다. 개관과 함께 현대카드가 후원하고 있는 기획전으로 멀티미디어 설치작가 양혜규의 대형 설치작업 ‘핸들(Handles)’이 2층의 마론 아트리움을 가득 매웠다. 거리 퍼포먼스 예술가로 알려져 있는 윌리엄 포프 엘(William Pope.L)의 기획전시 ‘member: Pope.L, 1978~2001’또한 현대카드의 공식 후원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포프 엘은 1970년대 중반부터 회화, 조각, 설치미술, 퍼포먼스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을 아아울렀던 작가다. 이번 전시는 1978년부터 2001년까지 그의 활동을 엿볼 수 있는 그림, 사진, 비디오, 설치, 조각 등 여러 작업이 나왔다. 특히 뉴욕시의 거리에서 신체를 사용하여 벌였던 일련의 획기적인 거리 퍼포먼스에 중점을 두고 있었는데,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당시 그가 신었던 신발, 입었던 의상, 착용했던 소품이 함께 전시됐다.
그 중 1978년부터 형태를 바꿔가며 진행됐던 ‘기어가기(crawling)’ 중에서 망토 없는 슈퍼맨 복장에 스케이트보드를 등에 매고 맨해튼의 가장 긴 거리를 따라 기어갔던, 지금은 무릎이 다 해져버린 슈퍼맨 의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프 엘의 ‘기어가기’는 예술가가 현대사회의 역사적, 경제적 자본주의 시스템과 인종의 관계를 어떻게 탐구하는지 보여준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맞은편의 발목쯤 되는 높이에 전시된 또 다른 ‘기어가기’ 사진은 이스트빌리지에서 행했던 포퍼먼스 ‘톰슨 스퀘어 크롤(Tompkins Square Crawl)’이다. 검은 양복차림의 작가가 한 손에 작은 화분을 들고 맨해튼 이스트빌리지를 기어간다. 1991년 7월 여름, 내리쬐는 햇발을 온몸으로 맞으며 뜨겁고 거친 표면의 시멘트 바닥을 기어가는 포프 엘, 사진 속에는 그의 일그러진 표정과 가늘게 찡그린 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기어가는 그의 시선 높이에서 촬영된 이 사진들은 비교적 낮은 위치에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허리를 구부려 고개를 숙이거나 낮은 자세로 쭈그려 앉아야 했다. 그렇게 관람객의 시야는 영상 속 포프 엘을 보기 위해 바닥 가까이 아래로 고정 됐다.
실제로 포프 엘이 ‘기어가기’를 수행하던 당시 그의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붙들었고, 함께 기어가기에 동참하거나 기어가는 행위를 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는가 하면,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낮추고, 기어가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움직였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철학적 사유와 동시대의 다양한 담론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더불어 서서 걸어가는 이들이 허리를 굽히도록 함으로써 낮고도 제한된 시야 속에서 비로소 교감의 대상이 됐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천히 걸음으로써 포프 엘이 만들어낸 시간의 세계로 들어가고, 일상의 익숙한 시간에서 이탈하여 낯선 시간성을 경험했다.
아마도 이러한 사진과 영상의 배치는 관람객을 당시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보다 가까이 초대하고 싶다는 의미일 테다. 이러한 긴장은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 획득한 운동적, 시각적 그리고 때론 촉각적인 감각을 통해 과거 수동적이면서도 추상적이었던 감상에서, 경험으로써 오는 좀 더 구체적인 이해와 나름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들은 결코 알지 못할 시야와 속도, 포프 엘의 전시는 수직성과 수평성에 대해 그리고 인종적 불합리한 관점에 대한 노동과 정체성에 대해 몸소 느끼도록 했다.
정한결 공연칼럼니스트/dear.hankyeo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