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 촉박 ‘합의 이혼’ 힘들어져
외신은 “연기 시나리오가 유력”
조기총선·제2국민투표 선택지
22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하원에서 진행된 EU 탈퇴협정 법안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 |
오는 10월 31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단행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계획이 결국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브렉시트 시한까지 남은 열흘 여 안에 영국과 유럽연합(EU)이 ‘합의 이혼’에 도달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남은 것은 브렉시트 연기와 영국의 합의없이 EU와 결별하는 ‘노딜 브렉시트’다.
22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EU 탈퇴협정 법안(WAB)을 사흘 만에 신속하게 처리하는 내용을 담은 존슨 총리의 계획안을 찬성 308표, 반대 332표로 부결했다. 통상 수 주가 걸리는 법안 통과 절차를 속히 마무리 지음으로써 브렉시트 시한을 맞추려는 것이 존슨 총리의 시도였지만, ‘사흘은 너무 짧다’는 야당의 반발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앞서 존슨 총리는 EU와의 새 합의안에 대한 의회 승인을 받기 위한 시도가 잇따라 실패하자, 승인투표를 거치지 않고 바로 EU 탈퇴협정 법안 통과를 추진해왔다. 의회에 제출된 법률안은 상하원에서 각각 3독회를 거쳐야 하는데, 당초 존슨 총리는 이를 24일 안에 마무리 지을 계획이었다.
전날 존슨 총리는 EU 탈퇴협정 법안을 공개하면서 제1독회를 마쳤고, 계획안 표결 전에 ‘첫 심사단계’인 제2독회에서 하원은 EU 탈퇴협정 법안을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가결했다. 의회가 EU 탈퇴협정 법안의 전체적인 윤곽에 대해서는 동의를 했다는 뜻이다.
계획안이 부결되자 존슨 총리는 “영국은 더 큰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고 하원의 결정을 비판하며 EU 탈퇴협정 법안 추진의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또한 존슨 총리는 ‘벤 법(Benn Act)’에 따라 자신이 요청한 브렉시트 3개월 연기에 대한 EU의 답을 기다리겠다면서, 동시에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준비는 강화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존슨 총리의 ‘경고’에도 외신들은 EU의 결정 하에 브렉시트가 연기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언급은 의회의 지지를 모으기 위한 지렛대로 사용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EU 역시 브렉시트 연기에 뜻을 모으는 분위기다. 도날드 투스크 EU 집행위 상임의장은 탈퇴협정 법안의 입법이 중단되자 회원국 정상들에게 브렉시트 연기 승인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브렉시트 정국의 남은 변수는 EU가 영국에 추가로 얼마의 시간을 줄 것인가다. 먼저 EU는 브렉시트 시한을 11월 중순 정도까지 몇 주만 연기할 것을 제안할 수 있다. 이 경우 존슨 총리는 합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회와의 ‘교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노딜 브렉시트의 위험도 덩달아 커진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의회가 단기 연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존슨 총리는 추가적인 연장을 요청할 의무가 사라지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의회 비준 가능성에 따라 EU가 조건부로 3개월 혹은 그 이상 브렉시트 연기를 제안할 수도 있다. 브렉시트가 장기간 연기된다면 존슨 총리가 거듭 언급해 온 ‘조기 총선’과 야당이 주장하는 ‘제 2국민투표’ 시나리오가 모두 가능해진다.
가디언은 “EU가 장기적으로 시한을 연기하고자 한다면 존슨 총리는 선거를 추진할 수 있고, 노동당도 이제 선거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NYT 역시 “제 2국민투표가 진행되려면 3개월 이상이 필요하지만, 1월 31일까지 연기된다면 총선을 위한 충분한 시간은 마련된다”고 전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