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EDM+그래픽 아티스트 결합무대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배워가는 ‘인생여정’
시각·청각·재료 실험 새로움을 찾는 과정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의 공연 모습. [서울문화재단 제공] |
아티스트에게 ‘새로움’은 일종의 강박이 아닐까.
이를 테면 바이올린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입히는 것부터, 경기민요 전수자가 드래그퀸 복장을 하고 퓨전 재즈그룹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것, 혹은 거문고 연주자가 술대가 아닌 활로 연주하는 것 같은, 익숙함을 벗어 던지고 조금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강박 혹은 숙명 같은 것은 아닐까.
활로 켜는 거문고의 묵직한 사운드가 EDM(Electronic Dance Music)의 노이즈와 어우러지고, 비계 위에 매달려 있던 무빙 빔이 무대 한가운데 내려 앉아 공간을 휘어잡는, 음악을 중심으로 공연예술의 몰입형 경험(Immersive Experience)을 가능하게 하는 ‘무토’(MUTO)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움’을 강박적으로 무장한 듯 보이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무토는 거문고의 박우재, 프로듀서 신범호,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홍찬혁으로 이뤄진 프로젝트 그룹이다. 거문고와 EDM과 미디어아트와 조명이 장르간 영역을 구분짓지 않고 소통하는 공연을 선보인다.
이들은 2016년 박훈규를 주축으로 구성됐다. 무토의 맏형인 박훈규는 ‘파펑크’(PARPUNK)라는 이름으로 15년 이상 빅뱅 등 아이돌 그룹을 비롯해 유명 가수들의 콘서트 영상을 도맡았다.
박우재는 벨기에 유명 안무가 시디 라르비 쉐르카위 팀에서 작곡과 연주를 맡아 유럽을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신범호는 2012년,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 일렉트로닉 음반상 등을 휩쓴 ‘이디오테잎’(IDIOTAPE)의 프로듀서 ‘제제’(ZEZE)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이미 각자의 영역에서도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은, ‘느슨한’ 계약관계를 갖고 무토의 이름으로 함께 공연을 한다. 무토라는 유기체로 뭉칠 땐 실험하고 싶은 모든 것을 쏟아낸다.
무토는 오는 10일 헤럴드디자인포럼2019에 신설되는 ‘아트나이트’(Art Night) 무대에서 단독 공연을 갖는다. 최근 서울문화재단 주최로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개막 공연 무대에서 무토를 만났다.
‘무토’의 멤버들. 왼쪽부터 박훈규, 박우재, 홍찬혁, 신범호. [서울문화재단 제공] |
“새로운 것 원하죠. 변화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고요.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훈규)
박훈규는 새로움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조명, 콘솔 등 무대 뒤에 가려져 있던 공연의 ‘조연’들을 무대 위 ‘주연’으로 전환을 이뤄 낸, 무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박훈규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버리는 것, ‘무대는 어떠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에 갇히길 거부하고, ‘언더그라운드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방법론을 탐색하는 과정 자체에 보다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국악, 전자음악 등 잘 알지 못하던 것들을 알아가며 공부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함으로써, 무언가를 얻어가는 ‘인생공부’의 여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30년 경력의 조명 감독들이 무토와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바닥에 무빙 빔을 놓는 것들을 새로워하죠. 조명은 당연히 ‘트러스트’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을 버리는 것이 무토가 추구하는 언더그라운드적인 새로운 방식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무토를 동양 악기와 서양 악기의 결합 정도로 평가하는 것을 이들은 거부한다. 단순히 ‘융복합 아티스트 그룹’으로 규정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특히 박훈규의 제자이자 예술적 파트너로 함께 공연하는 그룹의 막내 홍찬혁은 “융복합이라는 단어가 너무 쉽고 진부하다”고 했다.
“저는 격투기 보는 걸 좋아해요. 서로 다른 무술을 쓰는 고수가 만나 승패를 가르기 위해 새로운 공격 기술을 찾아내는 것이 포인트죠.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생겨납니다. 무토의 공연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공연장에 설 때마다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거죠. 조명도 연출도 공연 때마다 다른 것,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 무토인 것 같습니다.”
박훈규와 홍찬혁이 시각적인 경험을 디렉팅한다면, 박우재와 신범호는 사운드의 독창성을 실험한다. 박우재는 전통적인 거문고 술대가 아닌 바이올린 활로 연주를 한다. 단, 이 같은 ‘재료의 실험’ 역시 거문고를 새롭게 연주하기 위한 어떤 강박은 아니다.
“거문고 연주의 틀을 깨고 싶다거나 어떤 목표가 있어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지난 15년 간 연습 중에 우연히 장난처럼 발견한 거죠.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악기를 장악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의심없이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박우재)
술대에서 활로 넘어가는 건 거문고 연주자로서 큰 변화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 획일화된 사회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아웃사이더’ 정신, 그리고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즐겨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가능했다.
EDM 프로듀서 신범호의 공연 모습. [서울문화재단 제공] |
무토의 지향점은 ‘동시대성’에 있다. 그리고 그 동시대성을 가장 직관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멤버는 EDM 프로듀서 신범호다. 박우재의 거문고 옆에 나란히 앉아 전자음악을 연주한다. 활로 켜는 거문고 소리를 ‘지저분하다’라고 표현하는 신범호는 지저분한 노이즈마저 음악이 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의 즐거움이랄까요. 만약 저도 같이 국악을 연주했다면 지금 같은 시너지는 나지 않았겠죠. 우재와 전 서로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하나의 음악을 만들고 있어요. 사운드를 규정하지 않고, ‘컨템포러리’(Contemporary·동시대) 안에서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고 있는 거죠.” (신범호)
동시대성이야말로 무토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돌아 보면 비주얼이 사운드를 만나는 역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 둘을 동시에 흡입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거라고 보고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시대를 잘 만나 무토의 이름 아래 그것들을 함께 보여줄 수 있게 된 겁니다. ‘우리 팀은 이렇게 할 것이다’를 규정하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각자가 다른 팀과 만나면 지금과는 또 다른 프로젝트 결과물이 나올 테니까요. 무언가 규정지어졌을 때 금세 소멸하는 것들을, 우리는 경계합니다.” (박훈규)
4인의 멤버가 ‘무토’라는 완전체로 한 무대에 서는 것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멤버 각자의 바쁜 일정 때문에도 그렇지만, 압도적인 규모의 공간 설치 면에서도 그렇다. 무토는 헤럴드디자인포럼2019의 ‘아트나이트’ 무대에서 단독 공연을 통해 역대 보여주지 않았던 규모의 몰입형 공연예술 경험을 선사한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