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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동물학대와 재물손괴

중세 영국에선 여성을 강간했을 경우 가해자는 여성의 남편이나 여성의 아버지에게 돈을 지불하면 됐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재산이었다. 강간 때문에 재산에 일부 흠결이 생겼으니 그 피해만큼의 돈을 지불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됐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엔 그것이 법이었다. 원인은 법으로 보호해야 할 인간(법 인격)은 오직 남성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지는 불과 100여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893년(뉴질랜드)의 일이다.

지난 7월이다. 경의선 숲길에서 끔찍한 고양이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고양이의 꼬리를 잡아 바닥에 내리치고 발로 밟아 고양이를 죽였다. 경찰은 CCTV 영상을 분석해 범인을 잡았고 영상은 SNS를 통해 퍼져 국민적 공분을 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살해범을 잡아 강력 처벌해 달라’는 요청이 올라왔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경찰은 범인에게 재물손괴와 동물보호법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범인이 법원에서 실형을 살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농림식품축산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입건된 동물학대 사건은 모두 1546건이다. 이 가운데 범인이 구속된 사건은 단 1건에 불과했다. 동물 안락사 논란을 불렀던 ‘케어’ 박소연 전 대표는 200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을 안락사 시켜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기각됐다.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은 동물은 법이 보호해야할 ‘법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채로 끓는 물에 동물을 집어 넣고 삶아도(2015년 보신원 사건), 개에게 가학적 변태행위를 해도(2018년 대구), 유튜브를 통해 개를 잔인하게 폭행하는 장면을 생중계(2019년 7월)해도 범인은 실형을 살지는 않는다. 실제로 개를 폭행한 유튜버는 출동한 경찰에게 ‘내 재산이다’고 주장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말대로 개는 현행법상 ‘재산’일 뿐이다. 때문에 반려 동물이 해를 입을 경우 그 동물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만큼의 금원을 가해자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고작이다.

동물보호법이 강화돼 법정 최고형이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도록 바뀌었지만 법원에선 대부분 벌금형으로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선고를 내린다. 법원 판사들이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동물을 재산으로 바라보는 법철학 위에 선 현행법이기에 더 강한 처벌이 어려운 것이다.

해외에서는 어떨까. 미국에서는 강아지를 트럭에 매단 채 달린 범인에 대해 10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고, 폴란드에선 임신한 강아지를 굶겨 죽인 사람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사례도 있다. 독일은 개와 고양이 등에 고통을 가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뜬금없이 동물학대 얘기로 긴 글을 푼 것은 앞으로도 끔찍하고 잔인한 동물학대 사건은 계속 발생할 것이고, 그때마다 ‘처벌이 약하다’는 주장도 반복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법을 바꾸지 않고서는 동물학대를 근절키 어렵다. 정의당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는 취지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20대 국회에선 통과되지 못했다. 내년 총선을 기대해본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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