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만개 LED ‘초현실적 풍경’
“그냥 보다 보면 오감 열리는 경험”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빨강머리 앤’
원작 속 빈공간들 현대적 감각 재해석
3차원 공간으로 연출…12개 섹션 구성
관객에게 몰입적‘경험’을 선사하는 미디어아트가 진화하고 있다. 압도적 화려함을 선사하거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스토리를 제공하거나. 사진은 부산에 새로 개관한 미디어아트 미술관 뮤지엄 다: 의 ‘숲 속에서 잠들다’(왼쪽 사진)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머리 앤(Anne in Green Gables)’이 체험형 전시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TV속 친구, 소설 속 친구였던 앤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뮤지엄 다:·미디어앤아트 제공] |
소유보다 경험이 우선인 시대, 사람들은 ‘기록’한다. 무엇을 보았고, 먹었고, 입었고, 즐겼는지. ‘보여주는 일기장’ 소셜미디어를 사로잡기 위해서일까. 미디어아트 전시도 진화한다. 따라올 수 없는 화려함으로 관객을 사로잡거나, 깊이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공감을 끌어내는 경우도 있다. 어느쪽이든 잊지 못할 ‘경험’이 키워드다.
▶화려함의 끝에서 명상의 시간을=미술관 입구 오른쪽에 마련된 메이크업 룸을 지나 전시장으로 입장하면 바닥과 천정, 벽면에 설치된 8000만개 초고화질 LED에서 펼쳐지는 초현실적 풍경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몽환적 음악과 함께 쉼없이 펼쳐지는 만다라, 꽃, 색의 향연이 몰입적 감상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들의 원본 작업을 디지털화 한 미디어아트는 원본이 주는 아우라와는 또 다른, 실제 작품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8월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에 개관한 미디어 전문 미술관 ‘뮤지엄 다:’의 풍경이다. 개관 첫 날만 유료관객 1000명을 돌파한 이 독특한 미술관은 미디어 아티스트팀 꼴라쥬 플러스(장승효·김용민)와 기획사 쿤스트원이 설립했다. 프로젝션이 아닌 LED를 활용, 더욱 선명한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이 미술관 측의 설명이다.
개관전으로 펼쳐지는 ‘완전한 세상(Maxialia)’엔 꼴라쥬 플러스, 김영원, 알렉산드로 멘디니 등 16명(팀)의 작가가 참여했다. 미술과 과학, 패션, 가구,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장르가 섞여들며 현대미술의 결정체인 ‘미니멀리즘’의 반대인 ‘맥시멀’을 컨셉으로 내세웠다. 전시 제목처럼 압도적 스케일이 과할 정도로 시각을 자극한다.
장승효 뮤지엄 다: 대표는 “시각적 자극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뇌에서 피로감을 느껴 정보를 차단하기 시작한다. 눈 앞의 현상을 분석하고 판단하기 보다 그냥 바라보게 되고,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일종의 명상 상태로 들어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개관전은 내년 2월 16일까지 이어진다.
▶나의 기억 속 ‘빨강머리 앤’을 만나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1980년대 유년기를 보낸 3040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노래, TV에서 방영된 만화 ‘빨강머리 앤’의 주제가다. 발표된지 10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녀’로 불리는 ‘빨강머리 앤’(원제 : Anne in Green Gables)이 융복합 전시로 재탄생했다.
‘반 고흐 인사이드’, ‘클림트 인사이드’, ‘앨리스:인투더래빗홀’, ‘슈가플래닛’에 이은 ㈜미디어앤아트의 여덟 번째 아트 프로젝트로, 서울숲 갤러리아포레 MMM전시장에서 지난 6월부터 ‘내 이름은 빨강머리 앤’전이 진행중이다.
이번 전시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2차원 세계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원작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3차원의 새로운 공간으로 연출했다. 단순히 원작을 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원작 속 빈공간들을 스토리텔링한다. 앤이 에이번리의 초록지붕집으로 오기전까지의 삶, 공상을 좋아하는 앤의 방과 절친 다이애나와 함께 걸었던 유령 숲이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대형 설치 작품, 음악과 영상 으로 현실감 넘치게 펼쳐진다.
전체 12개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마담롤리나, 노보듀스, 안소현, 손민희, 박유나, 이영채, 최윤정, 김미로, KATH, LEEGOC 등 감각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이들이 그려내는 에이번리와 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관객은 자신의 기억속 앤과 마주하게 된다. 어린시절 상상속 친구였던 ‘앤’은 사실 관객 자신이기도 하다. ‘딸과 함께 관람하는 전시’로 인기가 좋은 이유기도 하다. 10월 31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