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무자비한 면모”
WP “최장 민주주의 한계 시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EPA] |
“존슨 총리의 무자비한(Ruthless) 면모가 드러났다”(뉴욕타임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의회 정지’라는 초강수를 뒀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실현시키겠다는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다. 신임 총리로 취임한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자극적인 언사와 기행을 일삼고, 헝클어진 더벅머리와 늘어진 셔츠 차림을 뽐내는 ‘괴짜 정치인’이었던 그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라는 목표 앞에서 만큼은 ‘헌법적 위기’마저 불사하는 ‘인정사정 없는 전술가’로서의 모습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오는 10월 31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을 2달 여 앞두고, 존슨 총리는 공전을 거듭하는 브렉시트 정국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결단을 내렸다. 의회 활동을 정지시킴으로써 ‘브렉시트 드라이브’의 장애물 중 하나인 야권의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 탈퇴)’ 저지 노력을 원천 봉쇄 시킨 것이다.
28일(현지시간) 존슨 총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 오는 10월 14일에 여왕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여왕의 공식 자문기구인 추밀원이 영국이 존슨 총리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의회는 여름 휴회기가 끝난 내달 3일부터 2주간 재개됐다가 전당대회 기간을 전후로 휴회에 돌입, 한 달 뒤에 예상된 여왕의 의회 개막 연설 이후에애 다시 재개될 예정이다.
존슨 총리는 내달 17일에 예정된 EU 정상회의에서 EU와 막판 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즉, 10월 중순에 다시 열리는 의회가 브렉시트를 논의 할 수 있는 기간은 불과 며칠에 불과하다.
야권은 브렉시트 논의 자체를 제한하려는 존슨 총리의 행동이 비민주적이고 위헌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톰 왓슨 부대표는 “민주주의의 모욕”이라고 비난했고, 캐럴라인 루카스 녹색당 의원은 “헌법 유린”이라고 지적했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의회 정지는 민주적 절차와 의원들의 권리에 대한 위법행위”라고 비판했다.
주요 외신들 역시 의회 정지 조치가 가져올 ‘정치적 위기’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존슨 총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국가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국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오랜기간 브렉시트 정국을 이끌어 온 테리사 메이 전 총리의 행보와 오늘날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정면돌파’는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 관례를 중시하고, 의회의 거듭된 협상안 반대에 좌절하면서도 막판까지 의회를 설득하려고 했던 메이 전 총리와 달리 존슨 총리는 ‘대담한 결단’을 불사했다.
전문가들은 ‘브렉시트 전투’가 본격화되면서 존슨 총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의회 정치’ 조치의 이면에는 자신이 ‘소심했던’ 메이 전 총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호전적인 리더임을 분명히 했다는 설명이다.
토니 트래버스 런던정경대의 행정학 교수는 “존슨 총리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것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음이 드러났다면서 ”심지어 이번 조치로 존슨 총리는 정부가 자신의 통제하에 있다는 사실마저 확신시켰다“고 밝혔다.
브렉시트를 앞둔 기이한 괴짜 정치인은 이제 독재자로서 자신의 입지를 재정립시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독불장군’ 트럼프 대통령도 존슨 총리를 향해 ‘영국이 진짜 찾고 있었던 것’이라며 박수를 보냈다“면서 ”보조(Bojo, 보리스+존슨)이란 친근한 이름으로 불렸던 영국의 총리는 순식간에 반대파들에 의해 ‘별볼일 없는 독자재’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