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진 기관은 대출·투자 소극적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현상 자극
한번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 수렁
마이너스 경제의 고착화 우려감
세계 경제가 ‘제로(0)’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본격적인 마이너스 금리의 시대다. 경기침체 전조인 장단기 금리역전은 과거 수 차례 경험했지만, 마이너스 영역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유럽 주요 국의,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의 국채가 마이너스 영역으로 진입했고, 그 폭이 가파르게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 즉 공격적인 금리인하로 경제를 부양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자 ‘제로금리’의 벽까지 무너뜨리며 돈을 풀기 위한 안간힘이다. 하지만 비상수단은 글로벌 자금의 안전선호 심리를 더욱 확산시키며 마이너스 경제의 윤곽이 더욱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16세기 근대수학에 ‘음수’의 영역이 처음 보편화 된 이후에도 금리의 영역에서는 ‘플러스’만 존재했다. 경제위기나 전쟁 등 일시적 상황을 제외하면 ‘경제는 성장한다’는 전제가 유지됐다. 마이너스 국채금리의 등장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성립시킨다.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통화가치의 하락이다. 금융시스템에 돈을 맡기면 그 만큼의 이자를 지급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으면 통화가치가 올라간다. 금융시스템에 돈을 맡기기보다는 현금을 보관하는 게 낫다.
현재의 마이너스 금리는 일반적인 금융거래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은행이 예금에 이자를 붙여주기는커녕 비용을 떼어간다면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bank run)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은 기관들에게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해 경제성장을 촉진하라는 차원의 마이너스 금리다.
문제는 이 같은 ‘징벌적’ 마이너스 금리에도 돈을 가진 기관들이 투자나 대출에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이론적으로 자산가격 하락이 예상된다면 마이너스 금리로 돈을 맡기더라도 상대적 가치는 유지할 수 있다. 기관들이 돈을 보관하기 가장 좋은 것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다. 스위스, 독일, 일본 등 이른바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의 국채가 마이너스 영역에 먼저 진입한 이유다. 문제는 아직 ‘플러스’ 영역에 놓여 있는 기축통화국 미국의 국채다.
이대로면 달러로 돈이 몰릴 수 밖에 없다. 미국 국채 가격상승(금리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도 마이너스 금리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미 나왔다. 관건은 미국 경제다. 자산가격상승세, 즉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금리는 플러스를 유지할 수 있다.
미중간 무역분쟁은 분업화된 글로벌 제조업 생태계와 무역에 치명적이다. 특히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일본, 한국의 경제의 최근 부진이 심각하다. 세계 1,2위 소비국인 미중간 환율전쟁은 두 나라는 물론 전세계 경제의 가체사슬에 타격을 입힐 수 밖에 없다.
경기침체 신호로 받아들여지는 장단기 금리역전 현상에 대한 진단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완화적 통화정책의 결과일 뿐 예측지표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자금시장의 움직음을 보면 불황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는 모습이다.
시장경제는 결국 참가자들의 심리다. 만성적인 저물가와 저성장, 탈(脫)세계화의 움직임, 혁신의 지체 등은 위험선호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안전자산 선호는 불황의 에너지를 키우고 마이너스 경제의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1.00%까지 내릴 것이란 전망이 이미 지배적이다. 실질경제성장률 ㅁ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 장기국채금리는 기준금리를 하회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0%’대 금리 시대가 도래할 수 있는 셈이다. 아직 미국이 마이너스 금리로 접어든 적은 없다. 실제 벌어진다면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이 미칠지 예상이 어렵다. 대외개방 정도가 큰 금융시장을 감안할 때 우리도 마이너스 금융시대에 대비할 필요가 크다.
마이너스 금리는 한번 진입하면 쉽게 벗어나기 어렵다. 스위스는 2015년부터 줄곧 마이너스다. 제로금리가 ‘초강력’ 항생제라면, 마이너스 금리는 ‘마약성’ 진통제에 가깝다. 성장에 대한 믿음을 되살릴 혁신이 필요하다. 글로벌 공조도 중요하다. 통화·금융정책의 공조없이 마이너스 탈출이 시도된다면 급격한 자금의 쏠림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무역갈등과 같은 대결의 패러다임이 계속된다면 세계경제의 성장동력 회복은 커녕, ‘오늘 보다 내일이 더 어려운’ 마이너스 경제의 고착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