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발전·진화·진보 서사 담아
클레어 필몬의 스트라이딩 크롤링 공연장면, SIDFIT제공.[사진=이동헌] |
한때 석유를 비축했던 거대한 철판과 콘크리트 탱크들을 예술로 가득 채운 페스티벌이 열렸다. 7월 9일부터 6일간 서울시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올해 두 번째로 열린 ‘서울 국제 댄스페스티벌 인 탱크(이하 SIDFIT, 예술 감독 최문애)’인데, 뜨거운 태양만큼 도심 속 댄스페스티벌의 열기도 뜨거웠다. 세계 6개국 무용 예술가들이 총 32개의 공연을 모두 무료로 선보였고, 전문 무용인들과 일반 시민을 위한 워크숍과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무용 공연뿐만 아니라 음악가들과 무용수들의 즉흥 협업 작업 ‘인스텅 댄스 & 뮤직 콜라보레이션’, 동영상 라이브 스트리밍을 활용한 융복합 무용 전시, 공연 등의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시도들이 있었던 가운데, 축제 마지막 날에는 문화비축기지 T2 야외무대에서 클레어 필몬(Claire Filmon)이 진행하는 ‘스트라이딩 크롤링(Striding Crawling)’이 공연됐다. 이 공연은 포스트모던댄스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즉흥 무용가 시몬 포티(Simone Forti)의 대표적인 즉흥 메소드 중 하나다. 시몬 포티가 로마의 한 동물원에서 동물 움직임을 관찰, 모방하여 1974년에 움직임으로 확장한 작품인데, 올해 SIDFIT에서는 그 워크숍과 함께 공연이 크게 집중 조명 됐다.
클레어 필몬은 프랑스 출신의 무용가 겸 안무가, 교육자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은 시몬 포티의 작업을 그의 창의성으로 새롭게 변형, 창작한 것이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 야외무대로 클레어 필몬이 등장한다. 평범한 걸음걸이로 무대 위를 걷더니 잠시 멈춘다. 걷기로 시작된 그녀의 몸은 서서히 자세를 낮춰 바닥으로 옮겨가고, 점점 두 발 걷기가 네 발 걷기로 바뀐다. 멈춰 서기 그리고 걷기가 반복되고, 바닥을 뒹굴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걷는다.
직립 움직임에서 뱀처럼 미끄러지는 움직임으로 지속적인 교차를 보이며 무대를 종횡 한다. 네 발로 걷는 동안에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몸의 방향을 바꾸는데, 동물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움직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공간을 크게 휘젓는 등과 양 팔은 새처럼 날개 짓 하기도 하고, 꼿꼿하게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 양 팔에서는 초식동물의 예민한 귀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녀는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서서 걷는 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전방을 주시하는 도마뱀이 된다. 비정형적 동작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 공연은 인간의 발전, 진화, 진보의 서사를 동물에게서 찾는 것이다. ‘동물을 열등 하거나 인간보다 낮은 존재로 보는 목적론적 관점에 맞선다’는 것이 클레어 필몬의 ‘스트라이딩 크롤링’에 대해 설명이다.
세상 모든 것들과 교감을 시도하는 시몬 포티에게 있어서 곰을 비롯해 숲 속의 동물들은 매우 특별하다. 시몬 포티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피면서 동물들의 반복적인 걸음걸이와 놀이를 형상화하고, 동시에 그들과 동일시되는 인간의 경향을 발견하고 연구했다. 시몬 포티의 그러한 경험과 작업이 토대가 된 이번 공연은 국내 무용인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는 무대였다. 또한 같은 날, 한국무용의 거장 김백봉의 ‘부채춤’ 공연이 축제의 피날레를 함께 장식했는데, 동서양 무용의 업적과 성취를 돌아보는 의미 있는 기회였다. SIDFIT의 최문애 예술 감독은 “세계적인 무용가인 시몬 포티의 작품(클레어 필몬 출연)과 김백봉의 작품을 한 무대에서 감상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라며, 앞으로도 좋은 프로그램으로 전문 무용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과 학생 모두가 즐기는 ‘참여형 댄스페스티벌’로 지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공연칼럼니스트/dear.hankyeo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