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 뷰엔 칼루바얀 첫 한국전 전시전경.[아라리오갤러리 제공] |
질문은 심플하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지금 내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도 특정하게 구성된 것일텐데, 그 원류는 무엇이고 과연 그렇게 보는 방식이 합당한가. 그리고 과연 개인에서 나온 어떠한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결과물은 탄생할 수 있을까.
필리핀 작가 뷰엔 칼루바얀(39)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아직 대안을 찾지는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프로 불편러’에 가까운 문제의식은 주변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하다.
뷰엔 칼루바얀의 첫 한국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라이즈호텔에서 열린다. 회화를 포함해 수 백장의 아카이브자료와 설치, 영상작품 등이 모였다.
‘어느 청소부의 안내 - 풍경, 뮤지엄, 가정’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전시는 풍경으로 대변되는 자연, 뮤지엄으로 대변되는 사회 구조, 가정으로 대변되는 개인의 시각을 다룬다. 일상에서 우리의 지각을 지배하는 장치들이 개인의 세계관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한 장치다.
전시는 크게 풍경화에 대한 연구와 필리핀 혁명, 성 나자로 축제에 대한 작업들로 구성됐다. 풍경화의 경우, 작가는 풍경화가 르네상스 기법에 기반한 원근법을 충실하게 사용함에 주목했다. 이 도식적 접근법으로 19세기 필리핀 식민 시대 회화를 읽어내고, 동시대 세계화 물결속에서 ‘보편적’이라 인식되는 장치들이 사실은 특정지역 특수성과 연관돼 있음을 탐색한다. 풍경화 제작에서 지평선, 소실점, 배경 설정의 방식을 어마어마한 분량의 자료, 기록, 역사학 아카이브에서 추출했다.
두 번의 식민지 경험과 그에 따른 복잡한 정치지형을 가진 필리핀은 ‘혁명의 나라’기도 하다. 작가는 필리핀 혁명사에 대해 가장 잘 기술했다고 평가되는 책 ‘Pasyon and Revolution(열정과 혁명)’을 소재로 필리핀 전통의 해먹을 제작한다. 종이를 자르고 꼬고 붙여가며 만든 해먹은 휴식과 덫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지난 몇 년간 필리핀 국립박물관의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매일 똑같은 일과를 성실히 수행하며 작성한 다양한 기록물, 장서, 드로잉, 회화, 연대표도 나왔다. 작가는 “정리하고 깨끗하게 하는 청소부의 마음으로 성실하게 모은 아카이브다. 내가 있는 ‘동시대’를 캡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했고, 그 동시대를 구성하는 역사와 사회구조가 결국 세계적 맥락과 맞닿아 있었다”고 말했다.
뷰엔 칼루바얀은 필리핀 마닐라를 주요 거점으로 작업을 이어왔다. 산토 토마스 대학(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문화 유산학(Cultural Heritage Studies)을 전공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UST 미술관에서 보존 어시스턴트,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필리핀 국립 박물관에서 연구자로서 활동했고,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일본, 호주, 싱가폴 등지에서 다수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7년을 기점으로 12번의 개인전, 그리고 필리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한국의 광주시립미술관, 상하이 아라리오갤러리 등의 기관에서 수 많은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