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급소 노린 의도된 기습
경제 넘어 안보로 접근해야
밀리면 다음은 독도 노릴수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1876년 1월 일본은 일진(日進), 맹춘(孟春), 제이정묘(第二丁卯) 등 3척의 군함과 400여명의 병력을 조선에 보낸다. 전년 있었던 운요오(雲揚)호 사건에 대한 항의다. 일본이 불법적으로 우리 영해를 침입해 무력까지 행사한 사건임에도 조선이 국제법을 어겼다는 억지가 명분이었다. 일본군은 부산에 이어 강화를 공격, 불평등한 조건으로 조선 조정에 개항을 요구한다. 압도적인 화력에 놀란 당시 조정은 한 달만에 무기력하게 일본에 굴복한다. 강화도조약으로 불리는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가 맺어지고, 일본은 본격적으로 조선을 침탈하기 시작한다.
일본 아베 신조 내각이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에 기습을 가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심각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쏟아졌고, 우리 정부의 무능을 지적하는 비판도 높아졌다. 민간에서는 자발적인 불매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여전히 피해를 우려하는 의견도 많다. 이런 저런 위험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그런데 어떤 지적들은 너무 과민하다. 약한 부분이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행간이 읽힌다.
현재 상황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이 우리 정부가 미리 대처를 못한 데 대한 책임론이다. 그런데 하나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아베 총리 등 일본의 현재 집권세력의 생각이다.
임진왜란 이후 400년 넘게 일본의 국력은 우리를 앞서왔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개항 이후에는 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하지만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55년간 그 격차가 빠르게 좁혀졌다. 경제대국인 일본을 ‘이겨 보겠다’고 달려드는 나라 가운데는 우리나라가 단연 세계 으뜸이다. 실제 우리의 경제는 무역규모와 1인당 소득(구매력기준)에서는 이미 일본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중국도 버거운 마당에 한국까지 급성장한 데 대해 일본이 느끼는 위협은 상당할 수 있다. 패전의 멍에에도 불구하고 지난 150여년간 일본은 아시아 최강국을 자부했지만, 이제 그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 성장동력이 약해지고 있고, 고령화도 심각하다. 하지만 일본 극우는 여전히 패권에 대한 꿈을 품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침략의 과오를 아직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태도는 그 방증이다. 아베의 이번 도발은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추격자 한국의 급소를 찔러 치명상을 입히려는 의도다.
지난 600년간 동북아 국제전쟁을 주도해 온 일본은 ‘기습’의 나라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모두 기습으로 성공했고, 태평양전쟁도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했다. 성공한 기습은 늘 치명적이다. 이번에 우리가 입을 상처도 정말 아플 수 있다.
1876년 강제 개항 이후 우리 경제는 일본에 의존적인 성격을 띄게 됐다. 완제품에서 우리의 경쟁력이 일본을 넘어선 부분이 많지만, 아직도 소재와 장비는 의존도가 높다. 일본의 기술력도 원인이지만, 지리적 근접성도 한 몫을 했다. 제조업에서 물류는 상당히 중요하다. 짧을 수록 효율이 높다.
아프다고 아베 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견뎌야 한다. 이 참에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경제를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가 됐다. 짧은 시간에 극복하기 어렵지만, 반드시 이뤄야 한다. 내부결속이 중요하다. 우리 간 정쟁은 아베를 도울 뿐이다. 생산적인 내부비판은 바람직하지만, 이번 사태를 내년 총선에 정치적으로 악용하려해서는 안된다.
1876년 조선이 강화도에서 일본이 보낸 3척의 군함과 400여명의 병력에 불과 한달 만에 무릎을 꿇었던 배경에는 당시 집권세력이 분열된 탓도 컸다.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우리를 침략했던 ‘조슈파벌’은 지금도 일본 정치권력의 핵심이다. 이번에 굽히면 다음엔 독도를 노릴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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