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년 된 신혼부부·아들 취업 기뻐하던 60대 가장·20대 미얀마 청년에 닥친 참변
1일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서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 현장사고로 사망한 안모(30) 씨 유가족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현대건설 현장소장. 성기윤 기자/skysung@heraldcorp.com |
[헤럴드경제=김유진·성기윤 기자] “사람 구해야한다고 들어간 것 아니야. 다른 아이 같으면 도망갔을텐데…” (故 안모 씨 유가족)
서울 양천구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 현장 수몰사고로 실종됐던 현대건설 직원 안모(30) 씨와 미얀마 국적의 20대 협력업체 직원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로써 지난달 31일 쏟아진 폭우로 목동 빗물 배수시설 공사장에서 수몰됐던 현장 점검 작업자 3명이 모두 숨졌다.
이번 사고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인재(人災)로 볼 수 있는 정황들이 드러나는 가운데, 유가족들도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현장상황에 분통을 터뜨렸다. 현장소장이 유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유가족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전날 사망한 협력업체 직원 구모(65) 씨의 매제는 “배수구 여는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 안일하게 대처하다 일 터지니 서로 떠넘기고 있다. 양천구청이나 현대건설이나 둘다 문제다”고 분개했다. 이어 “지난달 우리 아들 취직했다고 기뻐하면서 연락와서 이제 살림 좀 피나 했는데 이런 사고가 났다”고 한숨쉬었다.
1일 새벽 시신으로 발견된 안모(30) 씨의 외삼촌도 “통신장치도 없이 사지로 몰아넣은 것 아닌가 싶다”며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엇던 사고가 일어난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어떻게보면 누군가 문제가 있는 사지로 몰아넣은 느낌”이라며 울먹였다.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현대건설과 양천구는 이번 사고를 둘러싼 인재 논란에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현대건설은 작업자가 지하에 남아있어 뒤늦게 수문을 닫는 등 조치를 취하려 했으나 시공업체는 권한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양천구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시설운영은 현대건설과 서울시와 합동으로 하게 돼 있다며 수문 개폐 권한은 모두에게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한 유가족이 “사망사고가 났는데 시행착오를 거쳐서 매뉴얼을 만든다는 거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날 장례식장에 모인 유족들은 고인들의 생전 사연들을 이야기하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건설 직원 안 씨는 이제 결혼한지 1년이 막 지난 신혼부부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서울시내 모 대학 동문으로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는 이날 망연자실한 채 앉아있을 뿐이었다. 안 씨는 지하에 남은 동료 두명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수문이 개방된 이후에 수로로 내려갔다.
이날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왔다는 안 씨의 대학동기 A(30) 씨는 연신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그는 “동료를 구하러 지하로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고 친구 성격대로 행동했구나 싶었다. 동기 중에 취업도 가장 먼저했고, 큰 건설사라서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시신으로 발견된 미얀마 국적의 20대 협력업체 직원의 동료들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고국 미얀마에 부모님과 형제자매 7명을 뒤로하고 홀로 입국해 일한지 2년만에 참변을 당했다. 한국에서는 가족도 애인도 없는 혈혈단신이었다. 이날 장례식장을 찾은 현대건설 측은 고인의 동료들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해 인터뷰 할 수 없다며 기자들과의 접촉을 차단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경찰은 구조작업이 완료됨에 따라 경찰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31일 현대건설과 하청업체 관련자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며 “향후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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