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 로넷(Russ Ronat), 바다 거북이(Sea Turtle), Mixed media on Canvas, 180x120cm, 2018 |
코끼리와 코뿔소, 호랑이, 기린, 눈 표범이 없는 곳에 과연 인간은 살 수 있을까.
인간이 저지른 자연환경 파괴와 기후변화의 여파가 이제 인간에게 향한다. 유엔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 총회보고서는 ‘수 십년 안에 최대 100만종이 멸종위기에 처할 것’이라 경고한다. ‘멸종’은 우리 인간에겐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연일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수치를 체크하고 마스크를 챙기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상황을 상기한다면 환경재앙의 심각성이 피부로 다가온다. 인간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800만 종 중 하나다.
이같은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낸 전시가 열린다. 서울 은평구 진관로 사비나미술관은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허그(HUG)’전을 개최한다. 고상우, 김창겸, 러스 로넷(Russ Ronat) 등 세 명의 작가가 참여해 1인전 형식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 메시지를 전한다.
자신의 초상을 촬영한 뒤 네거티브로 인화해 강렬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한 고상우작가는 곰과 표범, 사자, 코끼리 등 멸종위기의 동물을 주인공으로 작업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호랑이와 표범은 일본인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며 “그들을 살아서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네거티브로 반전했던 전 작업과 달리, 동물의 사진을 옆에 놓고 컴퓨터로 털 하나 하나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완성한 동물의 초상인 셈이다.
동물의 몸에 그려진 하트는 생명을 상징한다. 멸종위기의 동물들에게 또 다른 생명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한 하트다.
김창겸 작가는 3D애니메이션과 영상, 오브젝트를 결합해 생태계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대형 영상작품 ‘생명의 춤’에서는 전통문양의 꽃 형상과 만다라 문양 위로 인간과 멸종위기의 동물이 어우러진다. 작가는 만다라가 내면세계를 인식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에서 출발해 이를 심리치료에 활용하기도 한다. 김창겸의 작업은 오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미술관 외벽에서도 만날 수 있다. 3일간 저녁 8시부터 30분 동안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인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러스 로넷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초상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다. 흰 코뿔소, 바다 거북이, 구름 표범 등이 주인공이다. 거친 캔버스 위에 그려졌지만, 동물의 영혼을 직접 바라보는 듯 생생함이 살아있다. 로넷은 전 세계를 이동하며 각 나라 건물 외벽에 멸종위기 동물의 영상을 비추는 영상설치 프로젝트 ‘홀로세(Holocene)’로 유명하다. 2018년 대만 NTSEC(국립 대만과학교육센터)에서 세계 야생동물보호 NGO인 GWC(global wildlife conservation)과 협업으로 대만의 구름표범을 소개하고 돌려보내는 일을 했다. 행동가이자 예술가다.
환경문제를 이야기 함에 있어서 실천까지 고민하는 전시다. 21세기 미술관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도 곱씹어볼만 하다. 11월3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