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악 치닫는 日경제보복, 죽창들어 해결될 일인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가 더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반도체 핵심 소재에 이어 일본 정부가 아예 안보상 우호국가인 ‘화이트 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추가 경제보복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전략물자를 수입할 때마다 일본 정부의 수출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쐐기를 박는 경제제재 조치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생산 차질이 빚어지게 되고, 한미일 안보 공조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상황이 최악을 치닫고 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WTO 일반이사회에서 현 사태를 공식 논의키로 한 건 일단 다행이나 일본이 강하게 반대하면 이사회 자체가 연기될 수도 있다. 설령 이사회의 지지를 얻는다 해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정식 분쟁조정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까지는 3~4년씩 걸리기 예사다.
그렇다고 미국의 중재도 기대할 계제도 아닌 듯하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이 문제를 협의하려고 워싱턴을 찾았지만 미국측은 중재 의지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일본을 방문중이 미 국무부 고위관계자는 이 문제를 일본과 협의를 했지만 중재나 갈등 해법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사면초가의 상황일수록 냉정하고 치밀한 대처가 필요하다. 일본이 전략물자의 북한 밀반출 의혹을 제기하고, 실무협의대표단을 홀대하는 등 한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한다고 섣불리 감정적인 맞대응을 할 수는 없다. 문제의 발단이 된 강제징용 판결 대안을 마련하는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특사 파견 등 전략적인 외교전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중재를 끌어내야 한다.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로 부품 소재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은 아니다. 어떻게든 외교적 역량을 결집해 해법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죽창가’니, ‘국채보상운동’이니 하면서 반일, 항일 감정을 부추기는듯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참으로 부적절하고 무책임한 상황인식이 아닐 수 없다. 앞서 민주당 대책위 관계자는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는 언급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대중을 자극하고 선동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반문해 보기 바란다. 일시적 감정 풀이로는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과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