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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정으로 가는 학교폭력 ①] ‘서면 사과’ 불복해 법원 찾는 가해학생들
올 상반기 서울행정법원에만 50여건 접수, 판결 15건 중 9건은 가해학생 승소
주먹구구식 운영 학폭위…절차적 위법성 따져 '브레이크' 두는 법원
학폭위,학부모 전체회의도 열지 않고 가해학생 진술기회 주지 않아 문제
[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학생들 간 폭력 사건이 법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교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의 전문성 미비와 제도적 운영 미숙으로 인해 피해 학생들이 제대로 된 보호 조치를 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1일 법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반 년간 서울행정법원에 접수된 서울지역 학교폭력 관련 소송은 총 47건으로 확인됐다. 가해학생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학교는 초등학교가 11건, 중학교 21건, 고등학교 12건이었다. 대부분은 가해학생들이 학교를 상대로 징계조치를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이다. 판결이 난 15건의 사건 중 가해학생이 승소해 징계 처분이 취소된 경우는 9건에 달했다.

표면적으로는 가해학생이 승소한 사례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판결 내용을 보면 학생 측 승소 원인은 학폭위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에서 비롯됐다.

9건의 사례 모두 학교 측의 학폭위 구성 절차 미비가 원인이 됐다. 법원은 절차적 위법이 있었다며, 실제 ‘학교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한 실체적 판단은 따지지 않고 가해학생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학폭위 구성 때문에 징계가 취소되면 피해학생 입장에서는 응당 받아야할 사과도 못 받고, 최악의 경우에는 가해자와 계속 부딪히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학폭위 위원은 5인 이상 10인 이하로 구성된다. 이 중 과반수를 학부모전체회의에서 ‘투표로 직접 선출한’ 학부모 대표로 해야 한다고 정한다. 하지만 법원에서 가해학생이 승소한 사례들을 보면 이 찬반 투표를 거치지 않은 점이 지적된 사례가 적지 않다. 현행법상 학폭위는 가해학생이나 보호자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줘야 하는데, 이 절차를 생략해버리는 일도 잦다. 실제로 법원은 본인이 무슨 일로 학폭위 심의대상에 포함됐는지 모른채 처분을 받은 가해학생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법원이 절차적 정당성을 다소 과하게 따지는 데에는 학교의 학폭위 운영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피해학생측 쏠림’ 현상이 배경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교사 출신의 전수민 변호사(41·변시1회)는 “실제 학교 현장에선 피해학생 측 말만 듣고 무조건 가해자로 단정하고 학폭위를 여는 등 일방적인 진행모습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전 변호사는 “법원에서는 원칙적으로라면 가해학생, 피해학생, 목격학생을 불러 증인 신문을 하는 등, 하나하나 따져야 하겠지만 미성년인 학생들을 법정으로 부르는 것은 법원 입장에서도 부담일 것”이라며 “법원 입장에선 '얘(가해학생)가 진짜 학교폭력을 저질렀는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기에 절차적 정당성으로 갈음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절차상 문제가 없는 한 폭력사건에 대한 학교의 징계처분은 존중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도와주다 가해학생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한 피해 사례가 있다. 이 학생은 화장실에 갇혀 놀림을 받았는데, 여기에 가담한 가해학생은 자신은 그냥 구경만 했다며 학폭위가 내린 가장 경미한 ‘서면 사과’마저도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피해자가 폭행, 감금, 모욕을 당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학교폭력 가담 행위로 본다”며 “학교폭력예방법의 취지를 고려할 때 단호하고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한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 더이상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처분이 필요없게 됐다”며 징계 처분 취소를 구한 소송에서, 법원은 여전히 가해학생이 SNS 등을 통해 물리적 거리를 넘어선 괴롭힘을 저지를 수 있다며 패소 판결했다. 9명의 학생이 단체로 피해학생 한 명을 집단 린치하고, 전학처분을 받은 사건에서는 ‘전학 처분은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예방할 수 있고, 동시에 가해학생들에게 심각성을 상기시켜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효과가 있다’며 가해학생들의 취소 요구를 기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폭력을 저질러 출석정지 10일 처분을 받은 가해학생이 중학교에 진급한 이후 징계 받은 사실이 본인의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생활기록부에 남은 기록을 삭제해달라고 낸 소송도 있다. 본래 졸업 이후 2년 뒤엔 해당 기록이 말소된다. 법원은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맞고, 2년이 되기 전에 먼저 취소할 이유가 없다’고 엄격하게 봤다.

법원에 계류된 학폭 관련 사건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이 낸 소송도 있다. 현행 제도상 가해학생은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바로 소송을 낼 수 있다. 반면 피해 학생들은 징계가 취소된 데에 다시 문제제기를 하려면 지역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하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행정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다.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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