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은 더이상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험, 체험, 주도한다는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뉴욕에서 극찬을 받고 있는 '슬립 노 모어'. 공연장이 아닌 맨해튼의 매키트릭 호텔에서 공연한다. 사진은 공연장면. [사진출처=공식페이스북] |
현재의 공연은 다양한 실험성 있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관람’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미 관객에 있어 ‘본다’는 것은 ‘경험한다’, ‘체험한다’, ‘함께한다’, ‘주도한다’의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그러한 흐름을 견인하는 공연으로 현재 뉴욕에서 관객들의 관심과 극찬을 받고 있는 공연이 있어 다녀왔다. 이는 맨해튼의 매키트릭 호텔(McKittrick Hotel)에서 공연되고 있는 '슬립 노 모어(Sleep No More)'이다.
1930년대에서 50년대 사이 뉴욕을 풍미했던 패션과 분위기 그리고 누아르의 영화적 풍경 속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는 이곳에서 관객은 여러 사건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 사건들은 맥베스를 토대로 하고 있는데, 아마 관객이 그 줄거리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러 사건들이 맥베스의 세계관으로부터 나왔으나 저마다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으며, 산발적으로 펼쳐지는 장면들이 극의 흐름을 해체시키고 있다. 즉 맥베스에서 끌어낸 이야기들의 콜라주인 셈인데, 맥베스에서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이야기와 관련하여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상상속의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장소에서 파편적으로 펼쳐지는 장면들, 관객은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내려 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관객들은 극장 입구에서 마치 좌석을 배정받듯 하얀 마스크를 받아쓴다.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 긴장하고 있는 관객들은 배우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진 촬영은 물론이거니와 말(대화)조차 금지 된다는 것 이외에 아무런 안내를 받지 못한 채 관객들은 어느 층에 내려졌다. 마치 공포영화의 촬영장을 방불케 하는 공간들과 괴상한 분위기를 유발하는 음악소리에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호텔구조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각자 자연스럽게 후미져 있는 방들을 헤매기 시작하고, 그렇게 이 방 저 방 위층 아래층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배우들과 만난다. 여기서 관객들은 흰 가면으로 인해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방마다 배치되어 있는 설치물과 소품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배우에게도 과감하게 다가간다.
대사가 거의 없는 배우들의 연기는 춤과 혼합되며 펼쳐졌다. 주변 사물을 사용해 컨텍이 이루어지거나, 피를 흘리고, 욕조에서 몸을 씻고, 잠을 자고, 시비가 붙고, 누군가를 주시하거나 뒤 쫒고, 파티장에서 춤을 추고, 보드카를 마시며 카드게임을 한다. 그리움, 피로감, 분노, 경계, 좌절, 황홀, 공포 등 다양한 감정들을 표정과 제스쳐 만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배우들, 그 집중력과 몰입감이 상당히 뛰어났다. 관객들은 그들의 연기와 노련하게 몸을 쓰며 펼쳐내는 퍼포먼스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다. 장면의 전개가 매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장면이 끝나자 관객들은 스스로 선택한 배우를 뒤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관객이 스스로 다음 장면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간혹 배우가 관객에게 다가가기도 하는데, 선택된 관객은 배우의 손에 이끌려 어느 방으로 들여보내지거나 새로운 공간으로 안내 받기도 했다. 여기서 배우들이 구조적인 틀 속에서 연기하고 있지만, 관객과의 관계를 의식하며 상호작용하고 순간순간 즉흥적이게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연 속에서 관객들은 배우들과 뒤섞인다. 그러나 관객이 쓰고 있는 흰 가면이 배우와 관객 사이에 자연스럽게 경계를 만들고 관객을 유령 같은 존재로 보이게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많은 영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행위를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즉 공연에서 배우와 극의 사건은 현실이 되고, 관객은 가상 혹은 꿈같은 존재가 된다. 언뜻 인간이 시간여행에 의해 과거 인간들의 삶을 엿본다면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정한결 공연칼럼니스트 / dear.hankyeo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