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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 두산그룹, 형제승계 전통 변화하나
㈜두산, 미래사업 인적분할
형제 가문간 역할분담 재편
지배구조 변화 단초 될수도
LG·GS·LS 모델 유력해져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兄死娶嫂) 제도는 유목민족의 습성으로 형제상속의 흔적이다. 장자상속이 보편화된 유교질서에서 항렬을 거스른 역연혼(逆緣婚)은 ‘증(蒸)’이라고 해서 금기시됐다. 형제상속과 장자상속이 모두 나타난 나라에서 숙질(叔姪)간 권력 다툼은 꽤 흔하다. 조선 왕조에서 형(정종)의 왕위를 이은 태종과, 형인 양녕대군 대신 군위를 계승한 세종의 역사는 결국 단종과 세조간 비극으로 이어진다. 조선 당파의 절정으로 꼽히는 예송(禮訟)도 인조의 차남인 효종(봉림대군의 동생)을 중자(衆子, 장남이 아닌 아들)로 볼지, 차장자(次長子)로 예우할 지를 두고 벌인 논란이다.

형제간 권력승계는 리더의 경험부족 위험을 줄지만, 장자에 대한 우대 역시 바탕에 깔고 있어 갈등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부자상속에 비해 가족간 유대감이 강할 때 효과를 발휘하는 이유다.

오늘날에도 전제군주제인 사우디아라비아는 형제상속이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현 국왕은 창업군주인 이븐 사우드의 아들이다. 이븐 사우드의 부인 가운데 수다이리가 나은 이들이 유독 왕위를 많이 이었는데, 그 가운데 막내다. 형제상속이라면 당연히 그의 조카들 중에 가장 연장자가 왕위를 이어야 하지만, 지금의 왕세자는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다.

형제승계 전통을 이어온 두산그룹 지배구조에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 두산그룹 지주사 (주)두산이 최근 두산솔로스(OLED)와 두산퓨어셀(연료전지) 등 사업분야 두 곳을 인적분할하기로 하면서다. 이른바 미래사업분야다. 물적분할을 택했다면 신설회사는 (주)두산 100% 자회사가 된다. 이 경우 미래가치의 잠재수혜자는 (주)두산이다. 하지만 인적분할되면서 미래가치를 누릴 기회는 (주)두산의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고(故) 박두병 회장이 세운 두산그룹은 2대인 ‘용’자 항렬에서 형제간 경영권 승계를 마쳤다. 3대 ‘원’자 항렬의 시대가 이제 막 시작됐다. 적장자에 지분을 몰아주지 않는한 대를 거듭할 수록 지분분산이 빠르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 형제와 사촌들이 손을 잡아야 일관된 그룹 경영권 행사가 가능하다. GS나 LS는 사촌간 그룹을 공동지배하되, 각 가문별로 독립된 사업을 소유하는 구조를 병행한다.

두산그룹은 장손인 박정원 회장이 경영을 총괄하고, 최대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박 회장의 친동생인 박지원 부회장이 맡고 있다.

박용성 전 회장 계열은 현재 주력사를 맡고 있지 않다. 장남인 박진원 부회장이 두산메카텍을 경영하고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번에 분할될 두산솔로스, 두산퓨어셀과의 사업 연관성은 비교적 높다.

두산건설은 박용현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아들인 박태원 부회장이 몸담고 있다. 박용현 회장의 둘째, 셋째 아들인 박형원 부사장과 박인원 부사장은 각각 두산밥캣코리아와 두산중공업에 근무 중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밥캣 인수합병(M&A)을 주도했던 박용만 회장이 담당하고 있다. 박용만 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재원 상무도 두산인프라코어에 근무중이다. 두산그룹은 중공업, 건설, 기계장비 등 크게 3개 사업부문을 영위해 왔다. 전자와 화학 부분이 법인으로 독립되면서 총수 일가가 나눠 가질 ‘파이’가 더 커지게 됐다. 물론 그룹의 주력인 중공업, 건설, 기계 부문은 분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가문 공동지배 회사인 (주)두산 아래에 있으면서 종가인 박정원 회장 계열이 이끌 것이 유력하다. 하지만 전자와 화학 등 당장은 비주력인 부분들의 경우 형제 가문들이 나눠서 소유할 수도 있다. 이번에 인적분할될 회사들은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아니어서 분리도 가능하다. 지분율 조정에 따라 가문 별로 몫을 나눌 수도 있다.

두산그룹의 향후 지배구조는 향후 두산솔로스와 두산퓨어셀의 총수일가 지분이동을 보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발행주식의 18.13%를 자사주로 보유했던 덕분에 (주)두산은 이번 인적분할로 두산솔루스와 두산퓨얼셀 지분도 18.13%씩 갖게 된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69%에 달하는 만큼 매각이나 맞교환(swap) 등 지배구조를 바꿀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주)두산으로서는 보유지분을 활용해 경영이 어려운 두산건설의 재무구조 개선을 지원할 실탄을 만들 수도 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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