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값만 오르고 양극화 심화
얼굴 바꾸는 위기…‘빚’ 때문
하이먼민스키 모델 살필 때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는 어찌보면 불운한(?) 경제학자다. 금융 불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거품(bubble)의 구조를 ‘하이먼민스키 모델’로 제시했지만, 정작 ‘실제 상황’인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의 사후에 발생했다. 이 때문에 민스키는 생전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0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고, 보유자산을 축소하는 작업도 9월말에 접기도 했다. ‘긴축종료’ 선언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양적완화 연장’일 수 있다. 지난해를 제외하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째 완화적 통화정책이 펼쳐지는 셈이다. 양적완화를 그리 오래 했는데도 경제는 긴축 움직임만으로 움츠려 들었다. 이는 과연 그 동안의 양적 완화가 얼마나 경제 펀드멘털에 기여했는 지를 의심하게 한다.
성장은 둔화하는 가운데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가격만 급등하고,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다. 얼핏 우리나라 얘기 같지만 사실 요즘 미국에서 커지는 우려다. 부동산 값만 올랐고, 상품 물가는 지지부진이다. 주택시장이 실물경제와 괴리(out of sync)되는 현상이다. 주택 문제로 발발했던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집값 상승율은 다시 전체 물가 평균을 웃돌고 있다.
양적완화로 풀린 돈이 생산적인 부문이 아닌 자산시장으로만 흘러간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런데 임금인상은 이에 비례해서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만 급등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젊은 층들은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특히 미국은 학자금 대출이 많은데, 대출 받은 학생의 12%가 90일 이상 연체자다. 한창 때인데 대출 갚느라 내 집 마련은 커녕 소비여력도 부족한 셈이다.
펀더멘털 개선은 애매한데 자산가격만 치솟으니 거품 우려가 나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인다. 실제 미국의 금융회사들은 금융위기 이후 ‘제로금리’ 상황에서 엄청난 돈을 빌려줬다. 기업들은 빌린 돈으로 인수합병(M&A) 또는 자사주 매입에 나서 주가를 부양했다. 개인은 고가의 주택구입에 뛰어들어 값을 올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종 금융규제들도 대폭 완화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 차입 비율은 이미 금융위기 직전 수준이다. 금융회사는 이미 2008년 수준을 넘어 역대 최고치다.
18세기 초 영국의 ‘남해 거품사건’ 이후 인류는 적지 않은 경제위기를 겪어 왔고, 교훈도 얻었다. 여러 방비책도 마련했다. 그럼에도 위기는 계속 발생했다. 공통원인은 빚이다. 금융의 출발점이 빚이다. 규제의 발전속도는 금융의 진화를 따라잡기 어렵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정치권력은 거품과 부양을 착각하기 쉽다.
이달 연준의 결정으로 거품에 대한 우려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민스키 모델’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