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경영을 사실상 장악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본격적인 지배력 굳히기가 시작됐다. 그룹 전산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 상장이 본궤도에 오르면서다. 삼성SDS, SK C&C, 한화S&C(현 에이치솔루션 등 국내 주요그룹 후계구도는 대부분 전산관련 계열사의 상장 또는 지배구조 변화와 함께 속도를 높여왔다. SK나 한화와 달리 지주사 체제로 지배구조가 정리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그룹은 삼성처럼 총수 관련계열사의 잇딴 상장과 뒤이은 합병과 계열사간 지분거래 등이 뒤따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ES)의 후계구도 완성도를 가늠할 가장 중요한 것은 척도는 역시 돈이다. 그룹 지배력의 핵인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가치(현시가 약 3조6000억원)를 인수할 여력이다. 현재 ES가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는 2조원 남짓이다. 예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이노션 지분매각 대금 약 8000억원 까지 보태도 3조원이 채 안된다. 그나마 현대차 지분 2.28%(약 6400억원)는 지배력 강화에 중요해 지배구조 변화에 동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중요한 게 비상장사 지분이다.
ES가 지배구조 변경에 활용한 방안으로는 상장사와 상장사간 주식 맞교환, 일부 매각과 매입 등이 곁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상장사간 주식 맞교환이 아닌 방식은 그 동안 두 차례 모두 좌절됐었다. 현대오토에버에 이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이 유력한 이유다.
2002년 현대차그룹은 당시 ES가 지분 30%를 보유했던 본텍(옛 기아전자)과 현대모비스의 합병을 추진했다가 중도 포기했다. 당시 합병 비율이 ES에 유리해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여론 때문이었다. 지난해 5월에도 현대모비스의 국내 A/S 부품 부문을 떼어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시키는 방안이 좌절됐다. 두 회사 모두 상장사이지만, 주식가치로 평가하기 어려운 사업부간 결합이라는 점에서 다시 합병비율이 문제가 됐다. ES에 특혜가 될 수 있다는 여론에 현대차그룹은 또다시 합병을 포기한다.
세금도 중요하다. 지난 5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사업부문 합병 추진 당시 현대차그룹은 약 1조원의 납부세액이 발생한다고 추정했었다. 물론 ES나 정몽구 회장(MK)가 다 내는 것은 아니다. 계열사들이 납부분까지 합한 액수다. 새 지배구조 변경을 추진하면서 당시보다 세금을 줄이기 쉽지 않다.
사실 현대오토에버는 규모 면에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에 이어 현대차그룹의 최신 ‘일감유동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대오토에버의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현대엔지니어링 상장도 빨라질 수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을 장악한 이후 삼성SDS 상장과 삼성에버랜드 상장,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등을 1년여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했었다.
비상장 회사의 기업공개는 해당회사 지분을 가진 계열사들에 호재다. 특히 ES의 지배력이 집중될 곳이 중요하다. ES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된다. MK 때처럼 현대모비스를 정점으로 유지하는 방법 또는 직접 지배하는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최종 귀착지가 어느 쪽이든 두 회사 모두 중요하다. ES 중심의 지배구조가 정리되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대책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 판매만 지난해 보다 낫다면 올해는 현대차그룹 관련주에 관심을 가질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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