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에서 꿀벌의 역할은 경제에서 금융의 기능과 꽤 닮았다. 꿀벌은 꿀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화분(花粉)을 퍼뜨려 식물들의 번식을 돕는다. 금융의 주요 기능이 돈을 골고루 뿌려 각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일이다. 꿀벌은 가축법(시행령)에 명시된 유일한 곤충이다.
꿀벌의 천적은 말벌이다. 우리나라 토종 장수말벌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크고 맹렬하다. 사마귀는 물론 거미까지 사냥한다. 단 몇 마리면 수만 마리의 꿀벌 군집을 몰살시킬 수 있다고 한다. 하루 항속거리가 100km를 넘고 최고속도는 시속 40km를 넘는다. 독성도 강해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정도다. 말벌은 꿀벌을 잡아 먹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다. 성충 말벌은 주로 액체성 먹이만 섭취한다. 사냥한 곤충류는 떡처럼 만들어 애벌레에게 먹인다.
7일 금융위원회가 우리은행의 우리금융지주 전환 여부를 결정짓는다. 인가가 확정되면 미뤄졌던 우리금융지주(가칭) 최고경영자(CEO) 선임과정이 진행된다. 선택지는 크게 둘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이 지주회장을 겸임할 지, 아니면 외부인물을 영입할 지다.
역대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1대 윤병철(하나은행), 2대 황영기(삼성증권), 3대 박병원(청와대 재경부 차관) 등이 모두 외부인이었다. 4대 이팔성 회장은 한일은행 출신이지만 은행장을 거치지 않았다. 당시 그의 회장 취임을 예상한 이들도 많지 않았다. 국내 은행금융그룹에서 은행장을 거치지 않은 회장은 외부인사를 제외하면 이 전 회장이 유일하다. 5대 이순우 회장은 내부 출신이고 은행장까지 역임했지만 그룹 해체를 맡았다는 점에서 다른 회장들과는 의미가 좀 다르다. 결국 우리금융그룹에서 내부출신으로 은행장까지 역임하고 제대로 ‘미래 비전’까지 그려 본 회장은 아직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은행장 자리가 안정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다.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해 한빛은행이 출범한 이후 초대 김진만(1999, 상업은행) 이후 이덕훈(2001, KDI), 황영기(2004, 삼성증권), 박해춘(2007, 삼성화재) 등이 외부인사다. 출신별 갈등 탓이라지만 2008년에야 이종휘(한일은행) 행장이 취임한다. 현직 손 행장은 우리은행 일부 민영화 이후 정부 관련 인사가 빠진 이사회에서 직접 뽑힌 첫 행장이다. 취임한 지는 아직 채 1년도 안된다.
이팔성 전 회장은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자리’를 대가로 거액을 건낸 사실이 법원 1심 판결에서 인정됐다. 만약 업무 관련으로 만든 돈이라면 ‘여왕벌’이라기 보다는 ‘말벌’에 가까운 행위다. 내부혁신 등 경우에 따라 외부인이 필요한 때도 있다. 하지만 외부의 힘에 의지해 자리를 얻게 되면 결국 기회를 만들어준 이에게 충성하기 쉽다. 말벌이 애벌레에게 ‘곤충고기’를 가져다주듯.
우리은행ㆍ금융지주 보다 더한 내홍을 겪었던 과거 ‘KB금융 사태’도 외부인들이 불씨였다. 은행과 지주사에서 오래 몸담았던 윤종규 회장이 행장과 지주 CEO를 겸임한 후에야 비로소 조직이 안정됐다. 지난해 국민행장 직은 분리됐다. KB금융와 우리은행이 다를 수 있지만, 큰 원리는 같아 보인다.
‘꿀벌’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왕벌’이다. ‘말벌’이 ‘여왕벌’ 노릇을 하면 벌집이 위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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