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우이(執牛耳)는 ‘쇠귀를 잡는다’는 뜻이다. 춘추시대 제후들은 맹약을 체결할 때 소를 잡아 그 피를 돌려가며 입술에 바르는 삽혈(㰱血) 의식을 행했다. 맹약을 어길 경우 그 소처럼 피를 흘리며 죽어도 좋다는 맹세다. 소의 귀를 잘라 피를 받고 쟁반 위에 올려놓으면 맹주가 가장 먼저 쇠귀가 든 쟁반을 잡는다. 소는 힘과 권력, 부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경제개발 역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기업인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다. 그의 창업도 부모님 몰래 ‘소’를 판돈 70원으로 시작됐다. 꼭 20년 전인 1998년 정 창업자는 소떼 500마리를 끌고 휴전선을 넘었다. ‘소’로 시작한 정 창업자는 마지막 사업인 남북경협에서도 ‘소’와 함께 했다. 소의 수명은 약 20년이다. 20년전 북으로 갔던 소들이 살아있다면 말년(末年)일 지 모른다. 새로운 ‘소’가 필요하다. 공교롭게도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4월27일은 음력으로 기축(己丑)일이다.
국토연구원이 2013년 발간한 ‘통일시대를 향한 개발협력 핵심프로젝트 선정 및 실천과제’에서는 핵심인프라 투자비용으로 20년간 68조원을 추정했다. 첫 5년 27조원, 이후 5년 17조원, 이후 10년간 23조원이다. 첫 5년 대부분은 건설, 물류, 에너지 등이다.
현대그룹 신화의 시작은 현대건설이었다. 남북경협의 선봉도 건설, 그 중에서도 경험 많은 현대건설일 가능성이 크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건설을 물려받지는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은행에 넘어갔던 경영권을 되찾았고 이제는 경영도 정상화됐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 이사회에서도 물러났으니 20년 전 시작된 현대의 소떼 경영은 3대째인 정의선 부회장의 몫이 됐을 지 모르겠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재계에는 창업세대의 기업가 정신이 사라졌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수출 역군임을 자부하던 건설업계도 이젠 ‘아파트 공장’이 됐다는 비아냥을 듣는 처지가 됐다. 남북화해와 평화체제 도래는 잊혀져 가던 기업가 정신을 되살릴 기회다. 남북관계 개선은 정치를 넘어 경제 이슈다. 어찌보면 21세기 대한민국 경제의 마지막 성장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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