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세 다 낸 돈으로 주식 매입
3세 경영참여 대신 사회적기업
공익활동에 회사돈 아닌 사재로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공자(孔子)는 요순(堯舜) 시절을 이상향으로 삼았다. 정치인으로는 주공 단(周公 旦)을 가장 존경했다. 하지만 요순과 단에 대한 역사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중국 황제들의 실제 롤모델은 이들이 아니었다.
전한(前漢)의 5대 황제는 고조의 4남인 문제(文帝)다. 그와 아들 경제(景帝) 시절을 묶어 ‘문경의 치’라고 부른다. 특히 문제는 안정과 검약을 실천한 군주로 유명하다. 후에 중국의 황제들은 ‘나의 정치가 과연 한의 문제만 한가’라고 자문할 정도였다. 당(唐) 때도 태종(太宗) 때 ‘정관(貞觀)의 치’, 현종(玄宗) 때 ‘개원(開元)의 치’ 등이 등장하지만 성군(聖君)의 원조는 문제다.
[사진=루트임팩트 홈페이지] |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7남이다. 그의 두 자녀가 금주 회사 지분을 매입했다. 2014년 3월 이후 4년만이다. 1986년생인 정경선 씨<사진>는 2006년 5월 증여 받은 돈 2917만원으로 현대해상 주식 2000주를 매입했다. 1984년생이 정정이 씨는 2007년 5월 역시 증여 받은 4946만원으로 3100주를 매수했다. ‘미성년 주식 부자’들이 수두룩한 재계지만, 정 회장 슬하 두 남매는 모두 성년이 된 후에야 주주가 됐다.
이들이 증여로 받은 돈과 배당금 등은 경선 씨가 43억원, 정이 씨가 6억7000만원 가량이다. 보통사람에겐 거액이지만 시가총액 3조2000억원짜리 회사 최대주주의 자녀 치고는 아주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이들 남매의 지분율은 0.31%, 0.12%다.
현대해상은 평균급여가 남자 1억1600만원, 여자 6100만원에 달한다. 보험권에서도 손꼽히는 고액연봉기업이다. 하지만 정 회장의 두 자녀는 30세가 넘었음에도 현대해상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아들 경선 씨는 2012년 ‘루트임팩트’라는 비영리 사회적기업을 설립하고 최고상상책임자(Chief Imagination Officer)로 활동 중이다. 정 회장이 이 곳에 사재로 지원한 돈만 28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좋은 일’에는 ‘개인 돈’이 아닌 ‘회사 돈’으로 주로 지원하는 다른 대기업들과 분명 다르다.
이른바 ‘반(反)기업정서’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핵심에는 기업 보다는 기업인이 있다. 대주주들의 편법적인 경영승계와 도덕적 해이 등이다. 세금 다 내고, 투명하게 경영한다면 나쁘게 볼 이유가 있을까.
현대해상의 경영승계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정 회장의 지분율은 21.9%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자사주 보유량이 발행주식의 10.8%에 달한다. 지주사와 사업사로 인적분할을 하고 ‘자사주의 마법’을 실행한다면 대주주 지배력을 크게 높일 수도 있다. 지배력이 높아지면 세금 다 내고 주식을 물려줄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