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 못하면 시장원리 처리 바람직
-韓 탈출비용 정부에 전가의도 의심을
-30만 일자리 눈멀어 ’밑빠진 독‘ 경계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꼭 1년 전 이맘때다. 대우조선해양의 ‘4월 위기설’과 대우건설의 대규모 부실정리(Big bath)가 경제뉴스의 상단을 장식했었다. 1년이 흘러 이름 하나가 더해졌다. 또 대우다. 옛 대우자동차인 한국GM이다.
20년 전 외환위기가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던 대기업들이 부실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고, 정부와 채권단이 ‘국민의 돈’을 들여 이를 감당했다. 재벌들의 ‘문어발식 경영’ ‘선단식 경영’이 손가락질 받았다. 대기업집단의 ‘방만경영’을 제어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속속 마련된다. 얼핏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믿음이 깨어진 듯 보였다. 과연 그럴까?
비리와 의혹으로 가득했던 대우조선에 1년 전 또다시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이뤄진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었다. 최근 한국GM의 ‘증자’ 요구에 정부와 산업은행의 고민이 깊은 이유도 ‘일자리’ 때문이다. 때마침 1년 전에는 장미대선이, 이번엔 6월 지방선거가 있다.
경제 논리로만 보면 스스로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아니라 정부나 금융권 지원으로만 유지된다면 의미가 없다. 특히 조선이나 자동차 모두 제조업 가운데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업종이다. 그런데 대우조선과 한국GM은 경우가 좀 달라 보인다.
대우조선은 최대주주인 산은의 원죄가 크다. 관리감독 소홀과 잘못된 경영판단에 따른 책임이 상당하다. 지난해 금융위원회가 추가적인 자금지원은 없다고 약속했고,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매각이라도 해서 투입된 돈을 회수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지켜볼 일이다. 또 지원이 필요하다면 금융위와 산은의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반면 한국GM은 산은이 최대주주도 아니고, 경영판단을 내리지도 않았다. 이미 지분가치가 ‘0원’이니 회수할 것도 없다. 일자리가 중요하지만, 없어진다고 해도 그 대부분의 책임은 GM 몫이다.
GM은 툭하면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자신들이 철수해서 일자리가 사라지면 한국도 손해일 테니 돈을 달라는 논리다. 지속적인 일자리, 즉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쓰이는 돈이라면 고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을 봤을 때 과연 가능할까?
GM의 한국시장 철수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른바 미국 ‘빅3’가 만드는 차종 가운데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차종은 얼마나 될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나 픽업 트럭 정도가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한국GM의 주력은 아니다. 독일, 일본, 현대・기아차와 GM의 승용브랜드를 냉정하게 비교해보자.
자동차공장이란 게 그리 쉽게 옮기거나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GM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면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 당장 글로벌 생산차질을 최소화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곧 비용이다. 낡은 부평공장과 가동률 바닥인 군산공장를 매각하는 작업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1만600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에 대한 퇴직비용만 해도 천문학적이다. 임금채권은 변제순위 최우선이다. GM이 6월 지방선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을 지렛대 삼아 ‘철수비용’을 마련하려는 속셈은 아닌 지 의심이 간다.
지피지기(知彼知己)다. 30만명의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밑 빠진 독에 나랏돈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일이다.
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