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왕이 원숭이들이 많은 산에 올랐다.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놀라 달아났지만, 한 마리만이 왕 주변을 맴돌며 날랜 잔재주를 자랑했다. 왕이 활로 쐈으나 그 화살마저 잡아버렸다. 화가 난 왕이 부하들에게 계속 활을 쏘게 했고, 마침내 원숭이는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왕이 신하들에게 한마디 했다.
“이 원숭이처럼 자신의 재주를 믿고 교만하게 굴다 죽임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경계하라”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Richard H. Thaler) 교수의 연구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장자(莊子) 서무귀(徐無鬼) 편의 얘기다. 모난 돌이 정을 받는 법이다. 잘난 인간 일수록 잘난 채 하다 제 몸을 망치기 쉽다. 탈러 교수의 유명한 저서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는 이제 상식이 된 이론이다. 투자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금과옥조 같은 책이다.
한동안 노벨경제학상은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가격을 예측해 돈을 벌 수 있느냐에 주목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어떻게 인간의 비합리적인 행동을 잘 읽어내느냐에 관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시조로 불리는 하버트 사이먼 교수가 1978년 첫 수상을 한 이래 1992년 개리 베커 교수까지 14년이 걸렸지만, 1994년 게임이론, 2001년과 정보 비대칭 연구, 2002년 전망이론, 2005년 갈등과 협력의 게임이론, 2012년 게임이론을 통한 배분연구 등이 수상하면서 경제학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지난 해 수상한 계약이론 역시 인간에 근거를 뒀다.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마틴과 마이런 숄스가 참여했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는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다. 이들은 합리적 가격 예측의 전문가를 자처했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모델의 유효성이 붕괴됐다.
리처드 탈러 교수의 풀러&세일러 자산운용의 ‘언디스커버드 매니저스 비헤이비어럴 밸류펀드’(undiscovered manager‘s behavioral value fund)는 2009년 3월 이후 512%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S&P500지수의 곱절 가까운 성적이다. 이름 그대로 전문 펀드매니저가 아닌 일반 투자자들의 행동가치를 따르는 ‘시장 순응적’ 투자전략이다.
자산운용시장의 오랜 화두가 수동형(passive)와 능동형(active)의 대결이었다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운용하는 ETF(상장지수펀드)와 인간인 매니저가 운용하는 개별종목 펀드간의 대결이다. 최근 자금흐름은 ETF 쪽이 우세하다. 인간은 높은 비용에 비해 AI보다 ‘더 비합리적’이어서 실수가 크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경제학은 AI 투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탈러 교수가 인간의 비합리성에 대한 연구가 더 성과를 거두면 AI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까지 이해할 지도 모르겠다. 다만 AI가 지배하는 시장에 과연 인간의 비합리성이 존재할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AI를 등판시켰지만, 비합리성이 사라진 시장에서 과연 얼마나 수익기회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인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된 AI가 철저하게 합리적일 지도 알 수 없다.
장자는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말라고 했다. 비합리를 제거하기보다는 비합리를 받아들이는 게 오히려 더 합리적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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