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신임 미국 육군부 장관이 되는 에릭 패닝(47)은 ‘게이’ 사실을 공개한 상황에서 17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의 공식 인준을 통과해 장관 취임의 장애물을 모두 넘었다.
패닝은 이로써 성 소수자임을 공표한 미국 정부 고위직 인사 중 처음으로 육군부 장관에 오르게 됐다. 그는 해군 차관보, 공군차관, 공군장관 대행, 국방장관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나 결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의 미국 상원 인준 요청은 8개월째 연기된 끝에 이번에 통과된 것.
오바마 대통령이 패닝을 육군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건 지난해 9월.
그러나 끝까지 패닝의 육군 장관 지명에 이의를 제기한 건 공화당 소속 팻 로버츠(캔자스주) 의원 등 일부 상원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내 포로수용소를 폐쇄하고, 수감자의 미국 이송 방침을 밝히자 이에 반발하면서 오바마가 지명한 육군 장관 후보의 청문회 인준마저 지연시켜 왔다.
에릭 패닝 미 육군장관 지명자 |
더군다나 오바마는 성 소수자에 대한 보호 정책을 지속적으로 역설해 온 터.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해 2월 국무부에 성 소수자 특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돌파구는 정치적 협상에서 나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반대파의 중심에 선 로버츠 의원의 지역구로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따라 로버츠가 패닝 인준 거부 의사를 철회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2008년 대선에서 임기 내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 수감자 전원 석방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다수당인 공화당은 격렬히 반발해 왔다. 이들은 풀려난 수감자들이 다시 중동으로 돌아가 9.11과 같은 테러를 이어갈 거라고 주장했다.
로버츠 의원은 막상 패닝의 상원 인준안을 통과시키며 패닝의 성 정체성은 직무 수행에 아무 관련이 없어 반대 의사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성 소수자 최대 인권단체인 ‘인권캠페인(HRC)’의 챠드 그리핀 회장은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은 미군 내에서 공정성과 평등을 향한 지속적인 진보가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할까.
일단 육군 장관이라는 직책이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없긴 하지만, 있다고 해도 불가능할 전망이다.
우리 군 형법 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항으로 군은 당사자들의 신고가 없어도 해당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 처벌할 수 있어 사실상 군 내부에서 동성애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성 소수자들은 해당 조항에 대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있지만, 지난 2002년과 2011년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2차례 연속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성 소수자들은 지난 2012년 다시 이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해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미 육군 장관은 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육군 관련 안건을 직접 보고받는 직책이다. 미국 국방부 장관은 또 따로 있다.
우리나라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육군 관련 안건을 보고받는 장관은 국방부 장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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