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치러진 중국의 항일전쟁승리 70주년 열병식. 유독 ‘DF’가 붙은 무기 이름들이 눈에 띄었다. ‘동풍(東風)’의 이니셜로 ‘동풍압도서풍(倒西)’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새로운 세력이 낡은 서구의 자본주의를 압도한다는 뜻으로 1950년대 문화혁명 때 유행했다. ‘동풍’은 동양의 대표를 자처하는 중국에게 힘의 상징이다.
그런데 ‘동풍’이 거세진 과정은 2000년 이후 중국의 외환보유고 축적과정과 묘하게 일치한다. 지난 해 6월에는 외환보유고가 정점을 찍은 이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외치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출범시켰고, 아프리카와 남미 등 신흥국에 천문학적인 ‘차이나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그런데 올 들어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급감하고 있다. 작년 6월말 4조 달러였는데 이제 3.6조 달러가 채 안된다. 올 연말 3.3조 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란 예측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산출한 중국의 적정외환보유고는 약 2.6조 달러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외환보유고 축소에는 이유가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풀린 달러는 신흥국의 투자에 상당부분 투입됐다. 자산가격이 올랐다. ‘거품(?)’도 끼기 시작했다. 국제 자산가치의 최종척도는 달러다. 달러가 강해지면, 거품이 아니라도 거품이 된다. 지난 해 긴축발작(taper tantrum)은 거품을 만들었던 달러에 대한 미국으로의 ‘예비회수령’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리먼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찍어냈던 달러를 다시 회수해야 인플레를 막을 수 있다. 올 들어 민낯을 드러낸 중국의 ‘유령도시’와 ‘과잉설비’, ‘과도한 빚’ 등은 신흥국으로부터 달러를 회수할 좋은 명분이다.
한국의 고성능 달러 현금인출기(ATM)도 한참 가동중이고, 중동의 오일달러 금고도 활짝 열렸다. 각기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의 매커니즘은 같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공식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프로세스는 이미 시작한 모습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신흥국 외한보유고 자산에서 이탈한 달러는 주로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갈아탄다. 신흥국 외환보유고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자산이 미국채다. 중국 등이 달러 마련을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한다면 가격하락(금리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신흥국들이 앞다퉈 미 국채를 내다파는 상황까지는 내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이 지경까지 간다면 중국은 물론 미국 금융시장도 패닉이 될 수 있어서다.
중요한 것은 보유달러가 줄어든 중국이 어떻게 글로벌 패권에 계속 도전하느냐다. 달러가 없으면 아프리카나 남미 등 신흥국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 AIIB와 ‘일대일로’를 실행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이쯤되면 왜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를 그리 염원하는 지도 이해가 간다. 시기만 남은 미국 금리인상 보다는 그 이후의 중국 경제를 상상해 보는 게 더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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