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와 조개가 싸우면 ‘지나가던 어부’가 이득을 본다. ‘어부지리(漁父之利)’다.
여야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진실 공방’이 결국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 칼자루를 검찰이 쥐었다. ‘검찰지리(檢察之利)’다.
잠시 시계를 10개월 전으로 되돌려 보자. 지난해 이맘때 여야의 대선 후보들은 ‘검찰 개혁 공약’을 앞다퉈 꺼내놨다. 각종 ‘정치 수사’가 법원에서 줄줄이 무죄 판결이 받았다. ‘기소독점권’ 등 검찰의 막강한 권력에 ‘칼(檢)’을 대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상설특검제가, 문재인 후보는 특별감찰관제가 핵심 공약이었다.
그런데 지금, ‘검찰 개혁’ 얘기는 오간데 없다. 오히려 여야가 검찰의 손에 스스로의 ‘목’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권영세, 김무성 등 여당 핵심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새누리당은 야당의 차기 대권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문재인 의원에 대한 ‘사실상의 고발장’을 검찰에 냈다. 검찰의 칼 끝이 어느 측을 향하든 어느 한 쪽은 치명상이 불가피하다. 처지가 이런데 누가 감히 검찰 개혁 얘기를 꺼낼까.
검찰에 걸렸던 개혁 표적지는 ‘국가정보원’에 대신 걸렸다.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공직선거법 혐의를 적용하면서 야당으로부터도 ‘잘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심지어 검찰 개혁을 벼르던 야당을 상대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됐다.
정치권력 사건을 전담했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최근 없어졌지만, 사실 그렇다고 검찰권력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어차피 ‘중수부’는 껍데기 아닌가.
지난 2010년 말,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무리한 수사’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의 고위 간부에게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하려고 하냐’고 물었다. 그는 “바뀐 정권은 반드시 검찰을 찾는다”고 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검찰을 찾았으니 그의 예상은 꽤 정확한 것이 됐다. 정치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치 못해 검찰을 찾았으니, 이젠 검찰이 정치를 개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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