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닥치던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궁동사회복지관. 정문영(55ㆍ여)씨의 지도 아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열심히 스텝을 밟고 있었다. 젊은이들에겐 시시할 수도 있는 동작이지만, 이렇게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발을 떼고 옮기는 것만으로도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몇 달 전만해도 가정주부였던 정 씨가 실버건강댄스 강사가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동사무소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우던 도중에 주변의 권유로 “한번 도전해 봐?” 싶었던 것이 시작이었다. 내친김에 실버건강운동지도사 자격증도 땄고, 서울대 평생교육원에서 실버헬스코치 과정까지 수료했다. 작년까지는 봉사가 주였지만, 올해부터는 수업료를 받으며 강의한다.
정 씨는 “수입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기분좋게 번 돈으로 교통비라도 벌고 손주 예쁜 옷이라도 사줄 수 있어 즐겁다”면서 “저처럼 강사하시는 분 중에 일흔을 넘긴 분도 계시다. 기회가 있으면 늦었다 말고 잡는 게 좋다”고 말했다.
‘경제수명 100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나이 50ㆍ60대에서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은퇴 후 일자리를 찾고 기존 자산을 운용하는 데 있어 핵심은 ‘자신의 나이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특히 정 씨처럼 비록 많지 않은 액수라도 지속적으로 현금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포인트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센터장은 “은퇴 후 소액이라도 용돈벌이 정도 할 수 있다면 체면에 관계없이 일해야 한다. 용돈벌이가 노후준비자금 인출을 늦출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이는 곧 자산의 복리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늦추면, 연 7.2%(최대 5년까지 36%)의 급여가산율이 추가된다”고 말했다.
거주주택 활용도 중요하다. 자녀들의 출가 후에도 체면 때문에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을 깔고 앉아있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관리비, 유지비가 적게 드는 소형 평수, 집값이 싼 근교로 옮겨 생활자금을 확보하는 것이 체면보다는 낫다.
만 33년을 근무한 공기업에서 퇴직 후 곧바로 관련 회사에 재취업한 박종대(61)씨는 운이 좋은 케이스다. 퇴직 1년 전부터 준비한 창업이 여의치 않던 차에 퇴직을 4개월 가량 앞두고 지금의 회사에서 제의가 온 것. 박 씨는 보기 드물게 재취업 이후에도 월급이 거의 줄지 않았다. 재직 시절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향후 5년은 더 일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둘째딸 출가 후 그가 세운 계획 1순위는 집을 좀 작은 평수로 옮겨가는 것이다.
박 씨는 “선배들이 나이들수록 오히려 도심에 살아야 한다고 조언해, 멀리 이사가진 않더라도 평수를 줄일 계획”이라며 “아직 명함을 갖고 있는 몇몇 친구가 밥값을 내기도 하는데,아무래도 은퇴 후 대부분은 검소해지더라”고 전했다.
“기존의 70~80세 수명시대에 가졌던 나이 개념을 철저히 무너뜨려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부동산을 끼고 있으면서 나이 60ㆍ70대 자식들에게 용돈 받으시겠습니까? 가족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자산을 유동화시켜야 합니다.” 김동엽 미래에셋 은퇴교육센터 센터장의 조언이다.
‘장수 리스크’는 보유 자산의 유동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해보지 않는데서 출발한다는 것. 때문에 김 센터장은 50ㆍ60대에서 부동산을 줄이고 위험자산에 장기적으로 계획있게 투자해야 함을 적극 주문했다.
그는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안전자산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위험자산도 10년,20년 투자하면 리스크가 줄고 수익성이 늘어난다. 50대는 앞으로 50년의 삶이 남아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부동산과 자동차 등 체면치레에 천착하는 것은 경제수명을 줄이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70대에 주택연금 가입자가 많은 것도 이 같은 고정관념에 자산운용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며,70대에 이르러서 집 한 채로 죽는 날까지 먹고 살 수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면 이미 늦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주택연금 출시 이후 4년 간 가입자들의 평균 연령은 73세로 기준 연령인 60세보다 13세나 많았다. 부부가 함께 사는 가구가 59%로 가입자 중 가장 많았고 목돈 인출 없이 일정 금액을 매월 나눠받는 종신 지급방식이 60%로, 의료비와 혼사비 등 목돈 인출이 가능한 종신혼합방식을 선택한 가입자보다 1.5배 많았다.
성연진 기자/yjsu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