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등 정부방침 주시
金사망후 리스크방점 변화
통일·재원마련 비상한 관심
통일비용 20년간 4000조
로드맵없으면 불안 자초
신평사 입김에 흔들릴수도
김정일 사망을 계기로 국제신용평가사들의 북한 리스크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그동안은 대외 충격에 유독 쿨렁대는 ‘한국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우선 고려대상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갑작스런 통일에 대한 준비’ 문제가 더욱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정일 사망이 중요한 변곡점이 되고 있다.
지난 19일 김 위원장 사망 직후, S&P와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평사는 모두 “김정일의 죽음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 경제의 ‘견고함’을 신뢰하는 제스처다. 실제로 금융ㆍ외환시장은 하루 만에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국제금융센터는 올 들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 순위가 16위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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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평사들의 시각이 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외국계 투자회사 고위간부는 “최근 해외 투자자들의 문의내용이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연평도, 천안함 사태 때만 해도 금융시장 상황과 환율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방침에 대한 문의가 주류였는데, 이번에는 통일 가능성이나 한국 정부의 통일재원 마련 계획 등을 묻는 질문이 늘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Geopolitical Risk)’란 표현은 단순히 ‘북한과의 물리적 충돌로 인한 금융시장의 단기 급변’을 의미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북한체제의 붕괴나 통일 상황을 한국이 경제적으로 감내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되리란 점을 시사하는 셈이다.
실제로 올 들어 국제신평사들이 내놓은 한국 신용등급 평가 결과서를 살펴보면 이러한 뉘앙스들이 묻어난다. S&P의 경우 아예 ‘높은 안보 리스크’와 함께 ‘통일 관련 우발채무 리스크’를 주요 평가요인에 포함시키고 있다. ‘지정학적 문제’가 결국 ‘통일 전후의 국가재정 건전성 문제’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이는 신평사들의 자체적인 견해가 반영될 여지가 커지고 입김도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통일비용에 대한 밑그림이 빨리 그려져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통일비용 문제는 여전히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통일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기관마다 추정치가 큰 차이를 보이지만 통일 후 20년 동안 적게는 700조원에서 많게는 4000조원까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통일 시 매년 112조6000억원씩, 20년간 총 2257조170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비교적 알뜰하게 추산한 입법부의 시각이 매년 112조원 수준이다. 올해 우리나라 재정수입의 3분의 1이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물론 정부도 이번 사태와 함께 통일비용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별다른 수가 보이지 않는다. 남북협력기금 내에 이른바 ‘통일재원 항아리’라 불리는 통일계정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연간 1조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은 ‘마중물’ 역할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통일비용이 결국 주요 이슈가 될 것이란 점에는 동의하지만 사실상 통일항아리가 통일재원의 전부”라면서 “‘통일세’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의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