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8일 열린 한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일제 강점기 종군 위안부 보상 문제를 직접 제기했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직접 위안부 문제 해결을 공식적으로 촉구한 것은 양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교토(京都) 영빈관에서 열린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의 회담에서 미래지향적 파트너십 구축을 위해서는 양국관계의 ‘암초’인 종군 위안부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통령은 발언의 대부분을 사실상 위안부 문제에 할애했고, 이 때문에 1시간정도 진행된 이날 회담은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진행됐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통한 위안부 문제 제기를 실무적으로 준비해오긴 했지만, 이 대통령이 이처럼 ‘작심 발언’을 통해 강력한 수준의 문제 제기를 하는 결단을 내릴지 미처 몰랐다는 후문이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가 반영된 대목이라고 청와대 측은 설명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도 “대통령은 의미 있는 발언의 90% 정도를 위안부 문제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전날 정상 만찬에서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줄곧 위안부 문제를 사전 조율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은 이 문제가 일본 국내법이나 실무적 차원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노다 총리를 위시한 일본 정부가 이제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노다 총리는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지혜를 낼 것”이라며 다소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자국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듯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비의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노다 총리는 회담에서 주로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협상 논의 재개ㆍ군수 협력ㆍ역사 공동연구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이날 이 대통령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성의있는 해결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평화비와 같은 상징물이 계속 연쇄적으로 건립될 수 있다는 점을 단호한 태도로 강조하며 노다 총리를 몰아붙였다.
일본이 예상대로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이 대통령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한 만큼 일본 정부도 과거와는 달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내부적인 고민과 변화의 움직임이 태동할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회담 말미에 대북 대응 협력과 함께 양국 역사의 공동 연구를 진전시켜 공동 교과서를 만드는 수준까지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언급을 잠깐 했을 뿐 사실상 처음부터 끝까지 위안부 문제를 거론했다고 배석자들은 전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우리 대통령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일본이 전혀 성의없이 대응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의 구체적 변화가 없으면 안될 것”이라며 “만약 변화가 없다면 한일 관계에서 일본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위안부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상회담의 공개 부분 모두 발언 순서에서 일본 정부 측은 노다 총리의 발언이 끝나자 이 대통령의 발언 순서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취재진들에게 퇴장을 요구해 빈축을 샀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