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기업환경 8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나라’ 순위에서 우리가 10위 이내에 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독일, 호주, 스웨덴 등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의 주요 선진국들을 모두 앞섰다. 싱가포르와 홍콩 등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아시아 국가 가운데 1위다. 하지만 8위라는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제도나 시스템 등 ‘계량적인 부분’에서는 기업환경이 개선되었을지 몰라도, 비용이나 생활여건, 사회적 분위기 등 ‘비계량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여전히 한국은 기업하기 편한 나라는 아니다. 체감도는 그보다 못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지난 9월에 발표된 WEF(세계경제포럼)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의 순위는 24위였다. 5월의 IMD(국제경영개발원)순위는 22위에 그쳤다.
시간, 절차의 숫자 등 객관적 지표가 동원되는 세계은행 순위와는 달리, IMD 순위는 설문조사를 통한 철저한 주관적 평가로 이뤄진다. WEF 역시 설문평가에 세계은행 지표 6개가 더해저 순위가 결정된다.
기업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부분에서, 우리의 기업환경은 여전히 개선해야할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이번 세계 은행 평가에서도 역시 이러한 문제점이 부분부분 묻어난다.
창업부분이 좋은 예다. 지난해 60위에서 무려 36계단이나 순위가 오르면서 전체 순위 상승에 원동력 역할을 했다.
인터넷 기반의 채택창업시스템이 도입되어 창업절차와 소요시간을 단축시킨 것이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하지만 창업절차나 시간 등에 비해 평가비중이 낮은 ‘GNI대비 창업비용’ 부분에서 우리는 14.6으로 경쟁국들보다 크게 뒤졌다. 홍콩은 1.9, 싱가포르는 0.7에 불과했고, 이 분야 107위를 기록한 일본의 7.5보다도 2배에 달했다.
형식적인 창업 절차는 편할지 몰라도 비용이 너무 높아 창업할 엄두를 낼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창업뿐 아니다. 건축관련 인허가, 전기연결 등의 분야에서도 우리는 유독 비용이 높게 집계됐다. 경제활동 전반에 비효율성이 높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경제의 ‘아킬레스 건’인 고용이나 노동유연성 관련 항목이 빠진 것도 이번 순위를 높게 끌어 올렸다. 세계은행이 지난해부터 평가지표 디테일화 작업을 하면서 올해는 빠졌다. 내년부터 다시 포함되면 순위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그렇다고 기업들이 정부탓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투자자 보호’ 분야에서 우리는 79위로 전 세계 중간수준에 그쳤다. 특히 계열사의 부당지원에 대한 주주들의 책임추궁 용이성을 평가한 ‘이사책임지수’ 분야에서 우리는 10점만점에 2점을 얻었다. 낙제점 수준이다.
투자자 보호 역시 5.3점으로 홍콩, 싱가포르의 절반 수준이었다. 기업들 역시 잇속은 챙기면서 책임은 도외시하고 있다.
홍승완 기자/sw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