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예정돼 있는 총선(4월)ㆍ대선(12월)의 위력은 대단했다.
정부가 제출한 2012년 복지 관련 예산은 총 92조원으로 지난해 86조 4000억원보다 5조 6000억원(6.4%) 증가했다. 이는 내년도 교육(45조원)과 국방(33조원) 그리고 R&D(16조원) 예산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규모다. 6%대 복지예산 증가율이 지속될 경우 2013년에는 100조원을 넘어서게 될 전망이다.
정부는 8ㆍ15 직후 이명박 대통령이 균형재정 달성 목표를 2013년으로 1년 앞당기라고 지시하면서 2012년 예산안에서 복지지출 증가 요구를 억제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굵직한 정치일정을 앞둔 여ㆍ야의 복지경쟁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복지예산 증가율은 지난해(6.2%)를 앞섰다.
복지예산 증가의 핵심 사업은 정부가 밝힌 ‘2012 사람희망 예산’이다. 지난해 보다 무려 21%(4조 4000억원)나 늘어난 25조 2000억원이 배정됐다. 생애기간 중 필요한 보육과 교육ㆍ문화ㆍ주거의료를 핵심 복지서비스로 선정했다. 정부는 복지 포퓰리즘과 차별화하기 위해 서민ㆍ중산층 위주로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복지예산이라고 설명했다.
사람희망 예산에는 보육에 전년보다 188%가 늘어난 1조 3799억원, 대학학자금 지원 등 교육에 1128%가 증가한 1조 6578억원, 저소득층 지원이 811% 늘어난 2700억원이 반영됐다. 내년 총 예산 증가율이 5.5%, 복지예산 증가율이 6.4%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사람희망 예산’에 집중된 정도를 알 수 있다.
만 5세아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보육료ㆍ유아학비를 전액 지원하고, 민간 병ㆍ의원에서 예방 접종 시 부모가 지불해야 하는 접종행위료 33만원 중 22만원(아동 1명당 12세까지 22회 접종)이 지원된다. 또 대학등록금은 총 2조 2500억원을 지원해 소득수준별 차등 지원(100∼20%)하도록 했다. 아울러 부양의무자가 중위소득(월 379만원) 미만이며 최저생계비 이하 장애인ㆍ노인ㆍ한부모가정 등 근로무능력 가구(61만명)는 추가로 기초수급자로 지정ㆍ보호하기로 했다.
한편 정부는 “2012년 예산은 ‘일자리 예산’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할 정도로 일자리 확충에 중점을 뒀다. 일자리는 경제성장과 서민복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다. 한국경제는 명실상부하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자리매김했지만 서민ㆍ중산층의 체감도는 턱없이 낮다.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을 통해 경기회복 효과를 아랫목에서 웃목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정부는 일자리 확충을 위해 ‘4대 핵심 일자리’사업을 내걸었다. ▷청년 창업 활성화(2000억원) ▷3단계 고졸자 취업 지원(6000억원) ▷문화ㆍ광광ㆍ글로벌 일자리(2000억원) ▷사회서비스 일자리(17만 5000명) 등 4가지다. 4대 핵심 일자리사업에는 전년보다 38.9%가 늘어난 2조원이 투입된다. 사람희망 예산과 비교할 때 증가율은 더 높지만, 전체 규모에서는 작다.
또 위기감을 더하고 있는 글로벌 재정 위기가 내년 본격화될 가능성에 대비, 선제적 대응을 위한 SOCㆍ환경투자 등도 알차게 늘렸다. 정부는 이를 ‘근육질 예산’이라고 비유했다. 즉, 쓸데없는 선심성 예산(기름기)을 모두 제거한 재정지출(근육질)만을 남겼다는 의미다. SOC 총 예산은 올해 24조 4000억원에서 내년 22조 6000억원으로 줄었지만, 4대강 사업을 제외한 SOC예산은 전년보다 9000억원 늘어난 22조 3000억원이다. 정부는 “SOC예산 중 도로 건설의 신규사업은 하나도 없다”며 “내년 총선ㆍ대선이라는 정치일정과 관련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박지웅 기자/goahead@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