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 미국의 한 금융전문 블로거의 짤막한 글이 인터넷 메신저를 통해 급속히 퍼졌다.
‘제로 헤지(Zero Hedge)’란 이름의 블로그에 필자 테일러 더든(Tyler Durden)은 이렇게 썼다. “만약 그리스가 디폴트(국가부도)에 들어간다면 9월 20일이 최적이다. 2037년과 2040년 만기 채권 이자 지급일이기 때문이다. 이자는 7억6900만 유로다”
1120원선에서 공방을 벌이던 달러화에 대한 원화값은 이후 폭락하기 시작해 결국 지난해 12월 29일(1146.40원) 이후 최저치인 1137원에 장을 마감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격한 이탈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최근 원화값 움직임은 그리스 부도설을 이용한 투기적 요인이 크다고 지적한다. 블로거의 글 하나가 시장을 뒤흔들 정도로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통화 대부분 약세지만 원화값 하락폭이 가장 크다. 9월 이후 달러화 대비 원화 절상률은 5.4%로 인도네시아(3.7%), 말레이시아(3.2%), 필리핀(2.3%)보다도 높다.
이상원 현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때문이라기보다는 그리스 부도설에 따른 심리적 요인 또는 투기세력의 영향을 더 받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원화값 급변동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유럽의 여러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10월 초까지도 외국인 투자자금의 급변동에 따른 국내금융시장 불안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외환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원화방어를 위해 섣불리 달러 매도개입에 나섰다간 ‘실탄’을 소진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그냥 두기에는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조선호텔에서 열린 ‘희망 중소기업 포럼’에서 물가상황을 묻는 질문에 “환율 때문에 걱정이다”고 했다. 전날(19일) 국정감사에서 “원화값을 안정시키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박 장관은 “외환당국을 믿어달라”는 말로 즉답을 피해갔다.
한편 최종구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이날 “최근 원화 움직임을 볼 때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며 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창훈 기자 @1chun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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