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9일 패닉에 빠진 글로벌 금융시장에 진정제를 놓았다.
9일 열린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는 미국 경제의 회복세가 예상보다 상당히 느리다고 우려하고 “오는 2013년 중반까지 예외적으로” 현행 제로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앞으로 더 강력한 경제 회복세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수단의 범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혀 추가 경기 부양책을 시사했다. ▶관련기사 3ㆍ4ㆍ5ㆍ15ㆍ17면
연준이 특정 기간을 명시해 금리 동결 방침을 밝힌 것은 처음으로, 최근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과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에 따른 금융 시장 폭락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소 2년 금리 동결을 이례적으로 약속한 셈이다.
이날 오후 연준의 3차 양적 완화(QE3) 조치를 고대했던 미 증시는 FOMC 성명이 나온 직후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이다가 30여분 후 버냉키의 향후 부양책 약속에 대한 기대에 무게가 실리면서 폭등세로 마감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을 벌떡 일어나게 할 아드레날린 주사는 아니었지만 시장의 공포는 일단 진정시킨 셈이다.
이에 대해 씨티그룹의 이코노미스트인 로버트 다이클레멘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연준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2년 금리 동결 약속으로) 시장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부양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클레이스캐피털의 투자전략가 마이클 폰드는 “연준 입장에서는 수동적일지라도 특정 시한을 미리 약속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연준이 QE3를 언급하지 않고 추가 부양책의 가능성만 열어놓은 것은 “연준이 패닉에 빠지거나 최근 금융 시장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듯이 보이지 않으려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골드먼삭스도 연준이 경기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QE3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확고히 보여준 것이라고 QE3 시행에 무게를 실었다.
이제 시장에서는 오는 26일 열리는 연준 연차총회인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버냉키가 QE3를 천명하리란 전망이 부풀어오르고 있다.
지난해 8월처럼 하반기 들어 미국 경제의 실물경제 지표가 급속히 악화되고, 이어 열린 8월 FOMC에서 경기 둔화를 인정하고, 월말에 열린 잭슨홀 콘퍼런스에서 버냉키가 추가 부양책을 천명하는 궤도가 재연될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FOMC 회의에서 지난 1992년 이래 처음으로 3명의 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나 QE3에 대한 연준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버냉키가 의장 취임 이래 이사들로부터 가장 많은 반대표를 받은 상황에서 잭슨홀에서 QE3를 먼저 언급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연준 내부의 갈등과 상관없이 이제 버냉키에게는 QE3가 선택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주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됐는데도 미 국채 가격이 폭락은커녕 반대로 최고치로 상승한 것은 QE3 전망 때문이었다. 이제 만약 QE3가 나오지 않으면 미 국채 가격이 붕괴돼 미국과 세계 금융 시장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 시장의 기대가 만들어놓은 베팅이 이제 버냉키에게 선택의 여지를 빼앗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가 잭슨홀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또다시 세계 금융 시장은 주시하고 있다.
고지희 기자/j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