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 8일 세계 증시가 일제히 폭락하면서 블랙먼데이 공포가 현실화되자 투자자들은 금, 엔, 스위스프랑 등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몰리며 가격을 끌어올렸다.
▶금값 첫 1700弗 돌파=전통적인 안전 자산인 금값은 온스당 17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8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12월 인도분 금값은 지난주 종가보다 61.40달러(3.7%) 급등한 온스당 1713.20달러에 거래를 끝내며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콜린 펜톤 JP모건체이스 상품시장 수석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전에 우리는 금값이 연내 온스당 18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이같은 분석은 최근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면서 “금값은 연내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온스당 2500달러 이상까지 갈수 도 있다”고 예상했다.
▶엔ㆍ스위스프랑 “사자”=상대적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엔화와 스위스프랑의 매수세도 집중됐다. 8일 스위스프랑은 달러당 0.7481을 기록해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올들어 25% 급등한 것이다.
일본 엔화 역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엔고 저지를 위해 4조5000억엔(약 60조원)을 풀어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 개입을 단행했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장 개입후 한때 80엔대를 기록했던 엔화값은 9일 오전 도쿄외환시장에서 77엔대 중반을 유지하며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데이비드 맨은 “엔과 스위스프랑의 강세를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미국 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나 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 경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믿을 건 미국채”=미국 국채는 신용등급이 종전의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로 내려갔지만 오히려 강세를 보이며 안전 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이날 뉴욕시장에서 미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지난 주말보다 0.21%포인트 하락한 2.35%를 기록했다.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미국채를 많이 보유한 일본을 포함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에도 미국채를 변함없이 보유하겠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이 미국채를 팔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채를 대체할 마땅한 자산이 없기 때문이다. 주요 채권국들도 보유 채권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채를 계속 사들여하는 형편이다.
▶더블딥 우려에 유가 급락=미국과 유럽의 불확실성이 확산되면서 귀금속을 제외한 원자재 시장은 급속히 얼어붙었다.
특히 유가는 경기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급락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 주 종가보다 5.57달러(6.4%) 하락한 배럴당 81.3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낙폭으로는 지난 5월 초 이후 가장 컸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