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빅은 25일(현지시간) 오슬로 시내 법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첫 심리에서 “나는 모슬렘(이슬람교도)으로부터 서유럽을 구하고 싶었다”면서 집권 노동당이 “모슬렘을 대거 수입했다”면서 “국가를 배신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지금까지 단독범행을 주장해 오던 것과 달리 “우리 조직에는 2개의 소규모 조직(CELL)이 더 있다”고 밝혀 사건 직후부터 의혹이 일던 공범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심리는 35분만에 끝났으며 심리를 진행한 킴 헤거 판사가 테러범의 이 같은 진술 내용을 오후 4시께(현지시간)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헤거 판사는 브레이빅에 대해 8주간의 구금을 명령했다.
앞서 브레이빅은 이날 심리를 공개할 것을 요청했으나 법원은 브레이빅이 공개 심리를 테러 합리화와 반(反) 이슬람 사상 전파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비공개로 진행했다. 그는 또 법정에 출두할 때 자신이 추종하는 단체 ‘성당기사단’의 유니폼을 입기를 원한다는 뜻을 변호사를 통해 밝히기도 했으나 이 또한 거절됐다. 이와 관련,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25일 브레이빅이 범행 직전 인터넷에 공개한 선언문 등을 토대로 온라인게임 2종과 리처드 1세 잉글랜드 왕, ‘성전 기사단’을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문화적 망상으로 지목했다.
브레이빅이 빠져 있던 온라인 게임 중 하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다. 이 게임은 참가자들이 수많은 인종과 문화를 갖고 있는 아제로스라는 땅에서 괴물과 싸워 공주를 구한다는 내용의 온라인 게임으로, 브레이빅은 법정 증언대로 모슬림으로부터 서유럽을 구해야 한다는 식의 망상에 사로잡힌 것으로 보인다. 브레이빅이 빠져 있던 또 다른 온라인게임은 ‘콜 오브 듀티:모던 워페어2(Call of Duty:Modern Warfare2)’로 가상세계에서 총을 쏘며 적을 부수는 게임으로 그가 무고한 다수의 시민들을 향해 마치 게임하듯 총을 난사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잉글랜드 왕 리처드 1세는 16세 때 부친 헨리 2세에 저항하는 반군을 진압하고 제3차 십자군 원정에 가담해 무슬림 군대의 지도자인 살라딘과 싸우기 위해 선봉에 섰던 인물이다. 이 과정에서 타고난 용맹성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무슬림 여성과 어린이까지 서슴없이 죽이는 무자비한 악명을 동시에 남겼다. 이밖에 중세 십자군 시대인 12세기 기독교 조직으로 십자군 원정에서 이슬람과 맞서면서 명성을 얻은 성전기사단도 그가 무슬림을 ‘처단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한 요인이라고 타임은 지목했다.
한편 이날 오슬로 테러현장에서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 하랄 5세 국왕부부, 이웃인 덴마크, 스웨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희생자 추모식이 열렸다. 오슬로에만 약 10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들었으며 노르웨이 각지의 도시에서도 수천여명이 행진을 벌이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이날 오슬로 시내는 테러의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상을 되찾아가는 분위기다. 테러 사태 후 처음으로 시내 주요 골목에 설치됐던 철제 바리케이드가 철거됐으며 경계에 나섰던 무장 군인들도 대부분 철수했다.
노르웨이 경찰당국은 이날 “오슬로 등에서 발생한 2건의 연쇄테러로 인한 사망자는 현재까지 7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밝힌 사망자 잠정치인 93명에서 줄어든 것으로, 청소년 캠프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한 우퇴야섬 현지에서 정확한 사망자 수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총리집무실이 있는 오슬로 정부청사 인근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의 사망자는 당초 7명에서 8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우퇴야섬 테러 사망자는 당초 86명에서 68명으로 줄었다. 실종자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경찰은 아직 희생자들의 명단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유지현 기자/prodig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