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일거수일투족엔 항상 세간의 이목이 쏠린다. ‘3세 경영인’이란 이름표 때문만이 아니다. 40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 부회장이 이뤄낸 성과가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정몽구 회장이 일궈낸 ‘품질경영’ 위에 ‘디자인 경영’이란 색을 입혔고, 시장은 뜨겁게 반응했다. 기아차의 화려한 변신은 그의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성과물이었다.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또다시 ‘황태자’의 입지를 공고히 하며 정 부회장은 현대ㆍ기아차의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새로운 시험무대에 올랐다.
정 부회장은 고려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MBA를 거쳐 현대차 자재본부 구매실장으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자동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 조달, 자재 관리 등을 담당하는 자재 부문은 자동차 산업의 뿌리와 같다. 차를 알기 전 볼트, 너트부터 알아야 한다는 현대가(家)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재계에선 정 부회장이 과거 정몽구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부터 받은 경영수업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정 부회장의 본무대는 2005년부터 펼쳐졌다. 상무, 전무, 부사장 등 고속 승진을 거듭해 입사 6년 만에 기아차 사장직에 올랐다. 정 부회장의 대표적인 키워드, ‘디자인 경영’이 빛을 발한 시기이기도 하다. 적자에 허덕이는 기아차의 회복약으로 ‘디자인’을 선택하자, 업계 안팎에선 우려 섞인 시선이 쏟아졌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확고한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2006년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K시리즈’를 첨병으로 내세워 기아차는 부활했고, 2008년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정 부회장은 틈만 나면 일선 생산현장을 방문해 현장과 품질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품질경영’과 ‘디자인 경영’의 결합이 기아차 성공 비결로 꼽히는 이유다.
지인들로부터 겸손한 인품의 소유자란 평을 받는 정 부회장이지만 업무에선 과감하고 적극적이란 평이 우세하다. 지난 1월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 참석, 현대차의 새로운 브랜드 슬로건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새로운 사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표할 당시 정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힘 있는 연설로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 5월 ‘한ㆍUAE 비즈니스 카운슬’ 때 정 부회장이 보인 모습도 자주 회자되는 대목이다. 에미리트원자력공사의 무하마드 이브라힘 알함미디 사장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현대차 공장에 관심이 많다. 직접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말을 듣자 “헬기로는 15분 거리다. 에코프렌들리 공장이라 자부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직접 무하마드 사장의 휴대폰을 건네받아 자신의 번호를 남겨주는 적극성도 보였다.
‘품질경영’ ‘디자인 경영’에 이어 정 부회장이 다음으로 제시하는 청사진은 ‘사랑과 신뢰’다. 그는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우리의 목표는 가장 많이 판매하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가장 사랑받는 자동차 회사이자 고객들의 일생에서 신뢰받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자동차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회사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미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실적이나 성능 등에 목표를 둘 단계는 벗어났다는 자신감으로도 볼 수 있다.
정몽구 회장이 일궈낸 현대ㆍ기아차의 글로벌 업계 위상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것. 이제 온전히 정 부회장의 몫으로 돌아왔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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