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할 틈도 없이 지진, 쓰나미가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면, 방사능은 재난보다 앞서 공포심을 퍼뜨리고 있다. 수돗물, 음식물 등 생활 곳곳에 서서히 방사능 오염이 가시화되면서 공포심은 극에 달하고 있다.
웃음기 사라진 도쿄의 풍경에도 방사능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도쿄에 근무 중인 현지 주재원 전 모 씨는 “유학생이야 원하면 일본을 떠날 수 있지만, 현지에서 직장을 가진 이들은 (방사능을 피하기 위한) 일본 탈출이 곧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처지”라고 토로했다.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만난 강성주(33)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 끝에 직장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는 “한국 지인들이 끊임없이 귀국을 종용하고 있고, 언제 방사능에 오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며 “다시 (직장에) 돌아가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귀국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도쿄 시내 마스크 품귀 현상, 사재기 열풍 등도 언제 찾아올 지 모를 방사능 공포가 빚어낸 단상이다.
한국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일본 어학연수 도중 귀국한 이모(28ㆍ고려대 3학년) 씨는 대인기피증에 걸릴 것 같다고 호소했다. 권 씨는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한다. 마치 전염병 환자로 취급받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일본에서 귀국한 사실을 숨기고 싶을 정도”라며 “일본에선 공포심에 스트레스받고, 돌아와선 주변 지인의 반응 때문에 생활하기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 측은 “중금속 오염처럼 방사능은 오염되더라도 피폭자 체내에 머물 뿐 전염되는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방사능은 감기처럼 타인에게 옮길 수 없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지만 한번 퍼진 공포심은 ‘팩트(fact)’보다 강하다.
한일 양국에 퍼진 방사능포비아는 오염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생사의 고비를 오가는 원전 폭발의 위기에선 한발 비켜섰지만, 수돗물, 음식물 등 방사능 물질이 주변에서 검출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은 공포와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 수돗물에 이어 도쿄 수돗물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돼, 수돗물에서 방사능 물질이 나온 일본 광역단체 지역은 10개 지자체로 확산됐다.
대부분 지역은 방사성 요오드만 검출됐지만 3개 지자체에선 세슘과 방사성 요오드가 함께 나왔다. 모두 기준치를 밑도는 수치지만 일본 현지 주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반감기가 짧아 3개월 이내 체내에서 거의 사라지는 요오드와 달리 세슘은 반감기가 30년으로 먹이사슬을 통해 생태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 오염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농산물에 이어 수산물도 기피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이바라키 등 일본 4개 지역의 시금치 등 채소류 출하를 중단했다. 후쿠시마 원전에 사용된 바닷물이 오염된 채 바다로 흘러갔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방사능 공포는 수산물로도 번졌다.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도 급기야 22일부터 일본산 수산물 수입ㆍ판매를 중단했다.
<김상수 기자 @sang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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