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방사능 유출 공포로 인해 인근 지역 주민들의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보이지 않는’ 방사능 공포에 허둥대는 사이 정작 눈 앞의 지진·쓰나미 피해는 도안시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6일 미국 CNN은 1957년 스리마일섬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연구한 미국 스토리브룩대(大) 메디컬센터의 에블린 브로멧 의학박사의 기고문을 통해 일본인들이 정신건강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 쓰나미, 핵 재앙 가능성은 개별적인 존재만으로도 정신건강에 아주 위험한데 현재 일본은 이 셋을 동시에 겪고 있어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브로멧 박사는 진단했다.
우선 스리마일섬 사고의 경우 대량의 방사선이 유출되지 않아 방사선 수준이 암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방사선 노출에 대한 공포가 장기적 후유증을 낳았다고 브로멧 박사는 설명했다.
브로멧 박사에 따르면 사고 이후 수년간 발전소 인근에서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 집단과 일반인 집단을 비교한 결과 우울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 비율이 전자에서 두 배 높았다.
이후 사고 10년 뒤 다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자 집단의 우울증과 불안 증세 수준이 사고 직후만큼이나 높았으며 이 중 75%가 당시까지도 사고 후유증을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체르노빌 사고 19년 후, 사고 현장 인근에서 멀리 이주한 어머니 집단을 같은 지역의 집단과 비교 조사한 결과 전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주요 우울증 증세를 보이는 비율이 두 배 높았다.
특히 전자의 대다수가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건강 후유증을 염려하고 있었으며 더 많이 걱정할수록 정신 건강에 대한 악영향도 컸다고 브로멧 박사는 밝혔다.
브로멧 박사는 최근 재난을 겪은 수많은 일본인 중 다수가 실제 방사선 노출량과 무관하게 건강에 대한 지속적인 공포와 장기적 우울증을 갖게 될 수 있으며 일부는 상당한 PTSD로 악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브로멧 박사는 이러한 정신적 후유증이 널리 확산될 뿐만 아니라 오래 갈 것이라며, 일본 정부와 의학계는 대중에게 방사선 노출에 대해 정직하게 알리고 정신건강과 신체적 건강 문제에 대해 동등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일본이 방사선 문제보다 안전한 식수 공급이나 장티푸스·콜레라 등 치명적인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쓰레기 처리 문제와 같은 핵심 사안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잇따라 나왔다.
리처드 웨이크포드 영국 맨체스터대(大) 의학박사는 “방사능 수준이 매우 낮지만 일반인들이 너무 걱정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진짜 문제는 지진과 쓰나미에 대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크포드 박사는 “만약 개발도상국에서 이 같은 지진이 일어났다면 지금쯤 수백, 수천 명이 장티푸스나 콜레라로 쓰러졌을 것”이라며 “문제는 이것이다. 쓰레기는 어디로 가나. 마실 물의 상태는 어떤가. 내가 공중보건 관리라면 그것이 내 최대 관심사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85만 가구에 전력이 끊겨고 150만 가구는 수도가 나오지 않고 있다. 44만명 이상은 이재민 신세가 됐다.
그러나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방사선 유출에 대한 두려움이 퍼지면서 일본인들의 눈길이 온통 여기에 쏠려 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닉 피전 영국 카디프대 교수는 “방사선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심한 공포감을 갖게 하는 독특한 요인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사선은 눈에 보이지 않고 모르는 사이에 퍼지며, 후유증이 수십년 간 지속되고 후유증 여부를 확실히 가려내기 어려운데다 대표적 후유증인 암 자체도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병이라는 것이다.
피전 교수는 “이런 것들이 하나로 결합하면 각종 공포 요인들의 ‘퍼펙트 스톰’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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