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정부의 원전 청사진에 악재로 다가왔다. 이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원전 건설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여론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원전 정책 특성상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도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은 우리의 신규 원전 건설 및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 도출에 부정적 영향을 야기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정부는 지난 2008년 8월 확정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신규 원전 부지 확보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2010년 23.3% 수준인 원자력 발전 비중을 2030년 41%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올 상반기 안에 신규 부지를 결정짓기 위해 현재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 삼척, 영덕, 울진 3개 지역이 경합 중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는 심상찮다. 시민단체의 반발 강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녹색연합, 에너지정의행동, 환경운동연합 등 여러 시민단체와 원전 건설 지역 주민단체는 오는 16일 대책회의를 연다. 이미 원전이 들어선 고리, 영덕, 울진 등 지역 주민은 물론 원전 건설 후보 부지의 주민단체도 반대 회의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이번 사고로 원자력 안전 신화가 깨졌다”면서 “원전 르네상스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연내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방안 기본 방침을 확정 지으려던 정부 계획도 삐걱거리고 있다.
지경부 관계자는 “일본 원전 사고가 어떻게 번져나갈지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다”면서 “(국내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일본 원전 사태의 윤곽이 좀 더 드러나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용 후 핵연료는 원자력 발전 후 나오는 고준위(높은 방사성을 지닌) 폐기물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핵연료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덩달아 사용 후 핵연료 처분 방안을 공론화해야 하는 정부 부담이 커지고 있다. 2009년 7월 경주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의 지반 강도 문제가 제기되자 사용 후 핵연료 관련 공론화가 연기됐던 전례가 있다.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 전선에도 이상 기류가 감지된다.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은 한국의 원전 수출 전략지로 꼽혔던 터키에서도 반(反)원전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
한국이 일본과 경합 중인 터키 시노프(Sinop) 원전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터키 정부는 밝혔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거세다.
우리 정부는 한국형 원전 수출 모델은 문제가 된 후쿠시마 원전의 ‘비등경수로(BWR)’ 방식이 아닌 ‘가압경수로(PWR)’를 채택해 안전하고 경쟁력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일본은 비등경수로와 가압경수로 건설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진 설계 면에선 수준이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기술 경쟁력을 지닌 일본 원전이 이번 대지진을 통해 취약점을 드러낸 것은 한국의 원전 수출 여건에 절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조현숙 기자/newea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