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성능 평준화 시대
디자인이 경쟁력 결정
기업 한단계 성장시킬
중소기업들 도전 기대
1990년대 초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 한 남자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이 너무 뜨거워서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마침 옆에 있던 종이판지를 보았다. 바로 이거야! 그는 그 판지를 종이컵에 둘렀다. 아무리 뜨거운 커피라도 문제 해결. 이것이 바로 요즘 우리가 주변의 커피전문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커피컵용 판지 홀더 디자인의 시작이다.
이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시작이 엄청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디자인이야말로 미세한 차이가 커다란 변화를 주는 대표적인 분야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과 성능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는 결국 디자인이 기업의 생존에 있어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부르너 교수가 자신의 저서 ‘애플과 삼성은 어떻게 디자인 기업이 되었나’에서 역설하듯, 위대한 기업의 성공조건은 ‘디자인’이다. 이제 고객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첨단기술도 아니고 낮은 가격도 아니다. 부르너 교수에 따르면, 고객들은 섬세한 배려로 소비자를 감동시키는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기 때문에 같은 MP3라도 애플이 만든 아이팟(iPod)을 사고,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애플의 아이폰(iPhone)을 산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70∼80년대 생산의 시대와 90년대 기술의 시대를 지나 현재 감성의 시대에 도달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할 수 없다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감성의 시대에는 ‘꼭 필요한 제품’이 아니라 ‘꼭 사고 싶은 제품’이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하지만, 이제는 ‘일단 다홍치마’여야 하는 시대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전자제품과 자동차가 디자인 혁신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한국산 TV나 자동차가 없어진다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 애플의 아이폰이 없어진다면 아쉬움을 넘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키고 우리 기업들이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 우리나라의 우수한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의 유수한 전시회나 박람회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스타 디자이너 또는 글로벌 디자인기업은 아직 없다. 또한 수출 한국을 빛내고 있는 우리의 수많은 중소기업 중에서 전 세계의 고객들로부터 열렬한 러브마크(Love marks)를 받으며 사랑받는 기업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중소기업들이 디자인을 경영혁신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지 못하는 탓이다.
괜찮은 기업에 머무를 것인가,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할 것인가? 우리 중소기업들의 도전을 기대해본다.